"어린이가 없잖아요!"
[ 현장칼럼 ]
작성 : 2024년 06월 07일(금) 09:00 가+가-
필자가 어린이부 전도사로 부임했던 첫 해의 일이다. 하나님 나라와 대비되는 차별적인 사회를 설명하고 싶어 하나의 이미지를 준비했다. 그 이미지란 바로 인터넷에 '사람'이라고 치면 뜨는 대다수의 이미지로 '비장애인 남성'이 인간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표현하는 은밀한 속셈이 있는 이미지였다.

"여러분, 제가 인터넷에 '사람'이라고 검색했어요. 이런 이미지(남성 비장애인의 실루엣, 비장애 남성들이 모여져 있는)들이 떴습니다. 저는 이 이미지들이 사람들을 모두 표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나요?" 어린이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필자가 으쓱한 어깨로 준비된 이야기를 시작할 참에, 한 어린이가 대답했다.

"어린이가 없잖아요!"

생각지 못한 답변이었다. 부족함이 많았던 초임 전도사의 한계이자 어느 새 어른이 되어버린 필자의 한계였다. '사람'이라고 적은 이미지에 어린이는 없었다. 청소년 역시 없었다. 부끄럽고 당혹스러웠다. 준비된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날 필자가 준비한 이야기는 이 사회가 얼마나 남성중심적인 '어른'들의 사회인가 하는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제가 사실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의 부족함이예요. 저는 이 이미지에서 여성과 장애인이 없다는 사실만 보았어요"라는 필자의 고백에 어린이들도 꽤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곧 웃으며 그 아이는 얘기했다. "저는 장애인이 없는 것은 몰랐어요!" "진짜 여자도 없네요!" "할머니도 없는데요?" "검정 피부의 사람도 없어요!" 다른 어린이들이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날 설교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여성과 어린이, 필자와 대답한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은 준비한 이야기보다 준비하지 않은 이야기를 더 많이 한 날이었고, 전도사보다 어린이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 날은, 그 어떤 날보다 깊이 있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날이었다.

종종 어른들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보며 '다음 세대'라고 표현한다. '미래를 책임질, 소중하게 보호해야 할' 등 다양한 의미로 꽤 멋지게 이해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말은 한계에 맞닿아 있다. 다음은 다음이다. 현재를 내포하지 않는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다음 세대'라고 표현하는 순간, 어린이와 청소년은 '현재'에선 그 어떤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사람들로 이해된다. 실제로 '다음 세대를 위하여!'라고 외치는 많은 어른들은 이 시대의 중요한 논의의 자리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초대하지 않는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 어린이가 답했다. "어린이를 있게 하면 되죠!" 이 어린이의 대답이 하나님의 나라를 되짚어보게 한다. 어린이의 시선에서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말씀을 고쳐 적어본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어린이나 어른이나 노인이나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하나님 나라를 생각해본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하나님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어 모두가 차별 없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라. 그 나라는 그의 자녀라는 이름으로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어른, 노인이 함께 오늘을 논의하는 나라다. 그 나라에는 '다음' 세대란 없다.



이은혜 간사 / 한국YWCA연합회 시민운동국 청소년운동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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