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의롭게 사랑하라
[ 일터속그리스도인 ]
작성 : 2024년 07월 17일(수) 14:27 가+가-
필자가 진행하는 일터신앙 강의에서 요즘 자주 듣는 질문은 "일터에서 '갑질'을 당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이다. '갑질' 관행은 일터에서 종업원들이 조직의 위계질서 안에서 흔히 경험하는 고질적으로 악한 문제다. 아래 직원에게 부당한 일을 시키거나, 폭력적 언사로 위협하거나, 원청 업체가 하청 업체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등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힘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한다. 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계 때문에 억울하지만 참는다.

최근에는 '을질'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유형의 '갑질'이 무시 못 할 정도로 퍼지고 있다. 인권이 강조되면서 모든 사람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기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당한다고 느낀다면 참지 않고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 한 언론사 팀장은 취재지시를 받은 후배 기자로부터 "왜 내가 해야 하느냐"는 항의를 받는 '충격적' 일을 경험했다. 예전에는 선배의 취재지시를 당연히 받아들였지만, 요즘 젊은 기자들은 조직보다 자기 권리를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직에 대한 충성과 신뢰가 떨어지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이렇게 변화된 일터 환경에서 그리스도인은 윗사람 혹은 아랫사람으로부터 부당한 요구와 대접을 받을 때 상대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무보수 야근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도맡아야 하는가? 윗사람의 성차별적이고 무례한 언사를 듣고도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아야만 하는가? 승진 경쟁에서 나보다 경쟁자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가? 아랫사람의 이기적인 요구를 받아주어야 하는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참 혼란스러운 질문들이다.

그러나 사랑의 원리를 알고 지킨다면 비록 과정은 힘들지라도 문제를 분명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일터의 문제들에는 고유하고 복잡한 속내가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아가페 사랑의 본질을 정확하게 안다면 지혜롭고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다.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사랑과 정의의 관계에 대해 논의해왔다. 프랑스 기독교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입장은 그리스도인에게 참고할 만한 좋은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궁극의 목적은 우리가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쾨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넉넉한 은혜를 주셔서 은혜로 받은 것을 이웃들과 정의롭게 나누게 하신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정의를 실천하는 수단이지 사랑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리쾨르의 논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로운 사랑'과 잘 어울린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아무런 심판도 없이 가볍게 용서하지 않으셨다. 우리 죄의 대가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짊어지게 하시고 우리 대신 심판받게 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은 자신이 죄를 심판하시는 정의로운 하나님임을 증명하시고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나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신다(롬 3:25,26; 5:1). 이것은 우리가 죄짓지 않은 의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분을 믿고 선을 행하는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딛 2:14).

이처럼 사랑의 목적은 사랑받는 사람이 의롭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이 사랑의 명분으로 불의한 요구에 순종하거나 협력한다면 이것은 아가페 사랑이 아니라 불의에 동참하는 죄를 짓는 행위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한다(고전 13: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일터에서 의롭게 사랑해야 한다. 불의하고 불순한 의도로 무례하게 요구하는 것은 지혜롭고 겸손하게 거부해야 한다. 높은 자리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아랫사람에게 자기 유익을 위한 무리한 권한 행사를 중단하고 부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반면, 낮은 지위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불의한 명령을 내리는 상사에게 왜 따를 수 없는지 진리의 관점으로 설득하고 올바른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망한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진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책임을 지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진리 안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견제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직장의 갈등은 각자의 책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인은 일터에서도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으로 존재한다. 진리는 불의하고 부당한 것들과 함께할 수 없다. 아가페 사랑은 오직 진리 안에서 실천하는 '의로운 사랑'이다.

일터의 '갑질' 문제는 인권 문제 이전에 진리의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웃을 진리 안에서 의롭게 사랑하는 성숙한 사랑을 훈련하자.



이효재 목사 / 일터신학연구소장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