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걸음걸이가 있다"
[ 2월특집 ]
작성 : 2024년 02월 09일(금) 08:00 가+가-
청년을 위한 교회의 역할 ②사회로 나가는 청년들 위한 교회의 역할
'어떻게 걸으시나요?' 이 질문을 하면 누구나 자신만의 걸음걸이를 표현한다. '저는 빨리 걸어요' '저는 팔자걸음입니다' ' 앞만 보고 걸어갑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가만히 듣다 보면 이 대답들은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 필자가 원한 답은 걸음걸이의 속도, 거리, 각도 등 정확한 숫자였다.

자신의 걸음걸이를 숫자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삶에서 내가 걷는 모습을 찍고 분석하고 기억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몸은 내가 어떻게 걷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그 증거는 신발 밑창이다. 오래 신었던 신발을 들춰보면 운동화든, 슬리퍼든, 어떤 신발이든 간에 동일한 부위가 닳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오른쪽 뒷부분이 유달리 닳아 있다. 내 몸은 내가 어떻게 걷는 것이 편하고 자연스러운지 알고 있다. 한 번도 확인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쌍둥이라 하더라도 닳아 있는 부분이 다르다. 또한 왼발과 오른발이 닮아 있는 부분이 다르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걸음걸이가 있다.

삶의 걸음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고유한 걸음걸이가 있듯, 삶의 걸음도 자기만의 걸음걸이가 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원하는 것들을 실현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여전히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것이 나에게 맞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있는 이유는 나를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신만의 일을 찾기 원하는 이들을 만난다. 매일 25세~35세의 청년을 만나고 있다. 교회의 영역이 아닌 일반 사회의 프립, 탈잉, 클래스101 등의 플랫폼과 협력해 컨설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오프라인 등 18년간 4000명 이상의 청년들과 하고 싶은 일, 자기만의 고유한 일들을 계획하고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몇 년간 배웠던 전공 또는 전문기술이 있다는 점, 두 번째는 1~2회의 취업·이직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전공과 일을 자신이 원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점수에 맞춰 전공을 결정했거나 연봉과 환경에 맞춰 직장을 구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자신의 미래, 원하는 일을 고민하는 것은 같다. 하지만 오히려 영민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어떻게든 그 다음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필자의 경험이지만 비기독교인들이 많았다. 때문에 목사로서 교회의 역할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기에 앞서 고민하고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관이나 프로그램들이 있다. 영국의 갭이어,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비전퀘스트 등이다. 이러한 기관·프로그램 등을 분석해보면 3가지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을 위해 떠난다'이다. 떠난다는 것은 단지 공간과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닌 자신을 확인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는 여행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모임이나 프로그램에 참석하기도 한다. 둘째, '자신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기억해본다'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몰입하는가?' '어떤 환경에서 가장 활발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성취경험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는가?'와 같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인식할 수 있는 질문과 답을 적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공통점이 자신의 일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셋째, '스스로 결정한다'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순간을 맞이한다. 진로, 진학, 취업, 이직 등 말이다. 이러한 삶의 변화를 도래하는 결정을 먼발치에서는 누구나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현실이 되면 이런 결정을 주도적으로 잘 내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러한 결정들을 잘 내리는 사람들을 분석해보면 일상에서 작은 결정들을 많이 내려 본 사람들이다. 작은 결정들이 쌓이고 쌓여 큰 결정, 중요한 결정을 잘 내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결정을 훈련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들은 '자신이 준비되었다'라는 마음보다는 상황상 무엇이라도 해야 하니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계를 유지하거나 그 자체가 자신만의 경험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속가능하며 전문가의 영역을 이뤄가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이해'가 너무 중요하다. 설문지의 답으로서의 내가 아닌 자기만의 언어, 시각으로 확인하는 '통합된 나'에 대한 이해 말이다. 그래야 자신만의 고유하고 자연스러운 재료를 확인할 수 있다. 교회는 이러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일의 본질과 의미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이란 경제활동을 위한 도구, 자신의 전문성을 펼칠 수 있는 장이다. 이에 더해 많은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일의 핵심 의미는 '내면을 단단하게 하며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자신의 성찰과 성장의 디딤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을 바라보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 일은 직업으로 인식한다. 허나 우리는 직업이라는 것이 영원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또한 평생 살면서 최소한 5번 이상의 직업이 바뀌는 것이 현실이다. 일의 정의는 이와 같은 직업·직장의 환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무인양품(MUJI)'이라는 회사의 이야기를 담은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양품계획 지음/웅진지식하우스)'이라는 책을 보면 무인양품의 대전략은 '도움이 되자'라고 한다.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펼치지만 모든 것이 대전략의 범주를 넘지 않는다. 때문에 자신들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향점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의 변하지 않는 일을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포괄적이고 추상적일지 모르지만 자기만의 감성, 바람, 가치, 그리고 신앙의 기본이 담긴 일의 정의가 중요하다. 직업·직장의 환경이야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를 얻고 기회를 찾을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은 일의 정의에 대해서는 안내 받고 꾸준히 지지받을 곳이 없다. 하지만 교회는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한 명, 한 명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확인, 일의 의미를 정리하고 꾸준히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다. 긴 삶에서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양과 환경을 청년들이 경험하고 이뤄갈 수 있는 기회를 교회가 꾸준히 제공하기를 바란다.

나요한 목사/사하라라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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