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신앙의 일치
[ 주간논단 ]
작성 : 2024년 06월 25일(화) 08:00 가+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학문과 신앙의 일치는 매우 중요하다. 이 둘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학업이나 직업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학교에서 배우거나 가르치는 내용이 교회의 가르침이나 신앙과 일치하지 않을 때 신앙적 갈등이 생긴다. 학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신앙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학문을 따르고 교회에서는 신앙을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이중적 삶의 태도이다.

학문과 신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교회학교에서 배운 창조 이야기를 우주 기원의 역사로 알고 있다가, 일반 학교에 들어가 고학년이 되면서 우주 기원에 대한 자연과학의 이론을 접할 때 혼란에 직면한다. 이때 어느 것이 맞느냐고 교회학교 교사에게 질문하지만, 만족할 만한 대답이 없어 신앙을 포기한다. 어떤 학생은 교회에서 배운 내용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달라 교회 다니는 것이 무섭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학생들을 대하면서 1960년대 주일학교에서 공룡은 없고 이를 믿는 것은 이단이라고 배웠는데, 그 해 여름방학 책에 공룡의 존재를 다룬 내용을 보고 혼란스러웠던 때가 기억났다.

학문과 신앙의 일치 문제는 교수들에게도 있다. 생물학과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교수는 교회에 갈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교회에서 진화론을 악마화하면서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설교를 듣는 것은 고역이었다.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는 교수의 이야기도 안타까웠다. 그는 에이즈를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에이즈 치료제 연구를 계속 해야 할지 중단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기도한다고 했다. 에이즈가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면 치료제 개발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학을 연구하는 교수도 교회의 성경공부반에 참가할 때 불편함을 느꼈다. 인도자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사실로 믿어야 한다고 말할 때 혼란스러웠다. 성경의 문학적 표현을 그렇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내용을 과학적 사실로 믿었던 때가 있었다. 과학적 연구 결과를 성경이나 교리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교회 재판을 통해 과학자들을 정죄하던 때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자 칼뱅은,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라 계시의 책이라고 하면서, 성경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자연과학이 하나님의 지혜와 창조의 비밀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한다고 하면서 과학의 발전을 지지했다. 심지어 그는 과학의 발전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발명품들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를 무시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사람들이 신앙인이든 불신앙 인이든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은사, 성령의 탁월한 은총을 받았다고 했다.

목회 현장에서 신앙의 중요성이나 성경의 가르침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학문과 신앙의 일치를 간과할 수 있다. 이는 사소한 문제인 것 같지만, 과학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매우 심각한 신앙적 갈등을 낳는다. 그리하여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신앙을 버리기도 한다.

신학교육 현장에서는 학문적 토론과 신학적 논쟁이 장려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학문과 신앙이 일치를 이루고, 지식이 더욱 심화하는 사회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독교 신앙과 선교의 논리가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학문과 신앙의 일치를 무시할 경우 교황무오설과 같은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할 수 있고 교회는 사회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 첨단과학기술 시대에 학문과 신앙의 일치를 이루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천사무엘 교수/한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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