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인 지식 직접 경험 … 나니아의 세계에선 현실로
[ 루이스다시읽기 ]
작성 : 2019년 10월 01일(화) 15:23 가+가-
<5> 세례받은 상상력
루이스는 깊은 마법의 세계에서 더욱 깊은 마법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러한 루이스의 사상은 그의 지식론, 즉 실재에 '대한' 지식과 실재를 '직접' 아는 지식의 구분을 통해 보다 더 확실해진다. 예를 들면, 마녀의 깊은 마법은 나니아 세계의 보편적인 법에 의해 얻어지는 추상적인 지식이다. 그러나 루이스는 친밀하고 직관적인 상상력을 통해 궁극적 실재를 '직접' 경험하고자 시도한다. 이러한 지식을 갖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이면서도 신비한 직관적 상상력을 루이스는 '세례받은 상상력'이라고 부른다.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환희(Joy)'의 근원인 신의 거룩함을 직접 체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는 독자들을 '세례받은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기 위하여 극복해야 할 "인간의 딜레마"를 먼저 제시한다. 우리가 구체적 실재를 '직접' 경험하는 순간에 그 경험하는 실재에 대한 지식을 완전히 가질 수 없는 데에 인간의 딜레마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이미 경험한 것을 지성적으로 간직하기를 원하지만 이것 역시 경험 밖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로서 그 경험을 온전히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재에 대한 직접적 경험과 추상적 지식은 구분된다. 우리는 사고하는 존재를 직접 경험하는 '구체적 지식' 대신, 우리의 '추상적 지식'을 더욱 발전시키며 끊임없이 사고하는 존재 자체에 가까이 가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결국 사고하는 존재 '자체'가 아닌 사고하는 존재에 '대한' 추상적 이론들이며, 이러한 사고하는 존재에 대한 추상적 지식의 강화는 오히려 우리가 사고하는 존재를 직접 경험하는 지식을 약화시킨다. 즉, 루이스는 실재를 '직접'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실재에 '대한' 지식을 인간의 딜레마라고 말하고 있다. 루이스에 의하면 이 딜레마는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
영화 '사자와 마녀와 옷장' 중에서. /네이버 제공

루이스는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옷장 안 나니아의 세계에 다녀왔다는 루시의 말을 전혀 믿지 못하는 피터와 수잔의 딜레마를 독자들에게 이입시킴으로써, 옷장 속의 신화 세계에 결코 들어가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시각을 진정한 장애물로 묘사한다. 루이스는 현대인들의 태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기 위해 분별력 있는 현실주의자인 수잔과 피터를 제시한다. 옷장 너머에 신화의 세계가 존재할 리 없다고 확신하는 이들은 지속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 실재에 '대한' 지식에 갇히게 된 독자들의 딜레마를 대변한다. 즉, 루시보다 나이가 많고 성숙한 수잔과 피터는 독자들의 의문을 디고리 교수에게 대신 묻고 있다. 피터는 "만약 옷장 안에 어떤 것이 실재로 존재한다면 그것들은 항상 거기에 그대로의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디고리 교수는 루이스를 대변하여, 수잔과 피터의 절대적 신념인 실재에 '대한' 지식에 대응하여 실재를 '직접' 경험한 루시의 말을 신뢰한다.

즉, 루이스는 인간의 딜레마를 안고 있는 인물로 수잔과 피터를,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세례받은 상상력'을 가진 캐릭터로 디고리 교수를 각각 설정한다. 이러한 인물들을 통하여 루이스는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친밀하고 직관적인 상상의 세계,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신화의 세계에 들어가는 '세례받은 상상력'을 갖도록 인도하고 있다.

<마지막 전투>에 보면, 아슬란에 '대한' 모든 지식들이 혼란스러운 마지막 시대에, 아슬란과 어린 아이들이 위기의 순간마다 나타나 나니아를 구해준 역사를 티리언 왕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아슬란과 아이들에 '대해' 역사로서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지식을 넘어 '직접' 아슬란을 부른다. "아슬란이여! 아슬란이여! 아슬란이여! 지금 곧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세요." 이제 아슬란은 티리언 왕에게 더 이상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티리언 왕이 '직접' 알고 경험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즉, '세례받은 상상력'은 티리언 왕에게 "알 수 없는 희망과 강한" 내적 변화를 일으킨다. 티리언 왕에게 처음 일어난 이 힘은 티리언 왕으로 하여금 나니아 세계 너머에 있는 아이들을 부르게 되고, 역사 속의 아이들은 티리언 왕 앞에 실재로 직접 나타난다. 곧 '세례받은 상상력'이 나니아의 세계에서 바로 현실이 된 것이다. 비로소 티리언 왕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추상적인 지식을 '직접' 명확하게 경험하게 된다.

티리언 왕은 눈앞에 보이는 마구간의 죽음과 종말을 넘어 부활한 초월적 존재인 아슬란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전투>의 처음부터 이 절망의 순간까지도 아슬란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슬란은 티리언 왕에게 '세례받은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힘'을 부어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티리언 왕은 아슬란이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슬란을 따르고 있다. 티리언 왕은 '아슬란의 이름'으로 진격하며, '아슬란이 보내는 모험'을 끝까지 감행한다. 즉 이것은 티리언 왕이 아슬란을 믿고 갈망하는 '세례받은 상상력'의 승리를 위한 구체적인 싸움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인간의 딜레마에서 벗어나 '세례받은 상상력'을 통해 직접 자신만의 신화 세계를 만들고 계속해서 확대해나가기를 소망한다. 루이스는 나니아와 페렐랜드라에서, 자신의 표현대로 "더 높고 더 깊게" 이 길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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