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선과 악 문학적으로 접근
[ 루이스다시읽기 ]
작성 : 2019년 11월 25일(월) 09:00 가+가-
<12> 판타지 문학과 악(1)

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 조성돼 있는 루이스광장에는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루이스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선과 악이다. 그는 이 주제를 자신의 많은 저서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선과 악의 주제와 관계된 루이스의 주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나니아 연대기> 7권 - <사자와 마녀와 옷장>, <캐스피언 왕자>, <새벽 출정호의 항해>, <은 의자>, <말과 소년>, <마법사의 조카>, <마지막 전투>; 우주 삼부작 - <침묵의 행성 밖으로>, <프렐렌드라>, <그 가공할 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천국과 지옥의 이혼>; <고통의 문제>; <인간 폐지>; <실락원 서문>; <단순한 기독교> 등. 루이스는 이 책들에서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선과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선과 악을 철학적으로 또는 신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고, 문학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루이스의 독특성은 선과 악에 대한 이론적인 깊이나 새로운 주장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만의 신선한 상상력과 표현 방식 그리고 구체적인 묘사에 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출간되자마자 획기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그 후에 루이스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작가'로 알려지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루이스의 작품에 나오는 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이스의 악의 개념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악에 대한 루이스의 생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악은 선의 결여, 부패 또는 왜곡이다. 즉 악을 독립적이고 실제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선에 기생하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악의 개념은 선이라는 개념이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악이 악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바로 선 때문이다. 선이 결핍되거나 잘못되었을 때 비로소 악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악의 개념에 더해서 루이스는 고통을 함께 다루고 있다. 즉 악과 고통을 불가분의 관계로 보고 있다. 고통은 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루이스의 선은 자연법 또는 도덕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자연법은 자연법칙과는 구분된다. 루이스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법칙 외에 자연법의 지배를 받고 있다. 자연법은 옳고 그름에 대한 법칙으로서 시대와 장소 그리고 문화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이 법은 실제 경험하는 자연이나 우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초월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개인의 자유의지에 좌우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연법의 근거를 선한 신에서 찾고 있다.

선한 신을 이해하기 위해 루이스는 누미노제에 대해 설명한다. 누미노제는 초월적인 존재에게 느끼는 일종의 경외감(awe)이다. 이 초월적인 존재는 접근이 불가능한 타자성(otherness)을 가지고 있으며 갈망을 불러 일으켜 경배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경외감을 끌어내는 신성한 능력의 소유자가 바로 자연법을 만든 존재라는 것이다. 자연법 또는 도덕률은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어 항상 선하게 살라고 요구한다. 즉 자연법을 만든 존재의 속성을 따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법 안에서는 그것을 부여한 초월적 존재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존재는 자연법 밖에 있으며 그 법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자연법을 통해 선한 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러한 선을 통해 악을 묘사하고 있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누미노제, 즉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아슬란이 등장한다. 그는 나니아 세계를 창조하고, 나니아 세계의 법을 만들고, 나니아 세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그 법을 따르도록 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 법에 순종한다. 루이스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악한 캐릭터들은 변질되고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한 교만하고 이기적이며 탐욕스럽다. 이들은 자유 의지를 남용하며 나니아의 법을 따르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교만은 근원적인 죄이다. 악의 뿌리로서 교만은 자아를 선한 신과 분리시키며 스스로를 자아 세계의 중심이 되도록 한다.

그러나 결국 악은 선에 기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선에 패할 수밖에 없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선이며, 악은 선이 없으면 개념 자체부터 불가능하다. 악한 캐릭터들은 아무리 강력한 마법을 부려도 결코 아슬란을 이길 수 없으며 아슬란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악의 결과는 죽음이다. 악한 캐릭터들은 아슬란과의 싸움에서 패할 뿐만 아니라 아슬란이 대리자로 보낸 아이들에게도 패한다. 끝까지 아슬란을 따랐던 자들에게도 죽음이 있으나, 이들의 죽음은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할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하지만 아슬란을 따르지 않았던 자들에게 죽음은 영원한 멸망이다. 아슬란이 나니아의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의 방식이 곧 죽음인 것이다.

루이스는 이레니우스, 라이프니츠 등 악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접근보다는, 악의 현실의 모습에 더 관심이 많았다. 루이스는 우리가 매일 매일 부딪치는 고통과 악을 다양한 모습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깊고도 가깝게 공명하는 이유이다. 다음 글에서는 루이스가 악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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