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이 다른 세계 탐구…내적 동력과 자산으로
<8> 판타지 문학과 시간(2): 아슬란의 간접 개입
작성 : 2019년 10월 21일(월) 14:26 가+가-

/출처 내셔널포트레이트갤러리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에서 대표적으로 두 세계를 등장시킨다. 한 세계는 "아담의 아들들과 이브의 딸들"(Sons of Adam and Daughters of Eve)이 사는 영국이고, 다른 한 세계는 아슬란과 그의 창조물들이 거주하는 나니아의 세계이다. 그런데 이 두 세계의 시간의 흐름은 일치하지 않는다. 두 세계의 시간의 길이는 물론이고 두께가 완전히 다르다. 루이스는 그의 판타지 문학에서 시간의 영원성과 무한한 현재에 대한 갈망을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루이스는 특별히 아슬란의 '직간접적인' 개입을 통해 시간의 두께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니아 세계의 창조자인 아슬란은 시간의 두께가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 이번 호에서는 아슬란의 '간접' 개입에 대해 분석하고자 하는데, 그 매개체는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는 '옷장,' <캐스피언 왕자>에서는 '뿔나팔'(a little ivory horn) 그리고 <마지막 전투>에서는 '기도' 이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옷장을 통해 나니아 세계에 처음으로 들어간 사람은 루시이다. 루시는 나니아에서의 유니크한 경험들을 형제들에게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루시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는다. 수잔은 커크 교수에게 루시에 대한 상담을 요청하며 말한다: "시간이 없었어요. 만약 그런 곳이 있다고 해도, 루시가 어디에 갈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우리가 그 방에서 나오자마자 루시는 우리를 따라 바로 뛰어왔어요. 1분도 채 안되는 시간이었는데 루시는 몇 시간이나 떨어져있었던 척 했어요." 루시는 형제들 중 최초로 시간의 길이를 뛰어넘어 시간의 두께를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시간의 두께를 경험하지 못한 형제들은 루시가 거짓말을 하거나 심지어 미쳤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커크 교수는 루시의 이야기가 진실일 수 있음을 암시하며 말한다: "만약 이 집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정말 있다면, 내 말은, 만약 그녀가 다른 세계에 가보았다면, 다른 세계가 우리의 세계와는 다른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너희가 그 곳에 아무리 오래 머물렀을지라도, 우리의 시간으로는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을 수도 있단다." 사실 커크 교수는 그 누구보다도 아슬란을 가장 잘 아는 캐릭터이다. 그가 바로 나니아의 창세기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의 조카>의 주인공인 디고리이기 때문이다. 커크 교수는 이미 시간과 공간의 이동을 경험하였고, 아슬란이 준 황금 사과로 자신의 어머니의 병이 낫는 기적 또한 체험하였다. 이 사과 씨앗을 자기 집 뒤뜰에 심고, 후에 마법이 깃든 이 사과나무로 나니아 세계로의 통로 역할을 하게 되는 바로 그 '옷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페번시 가의 아이들이 나니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 시간이 조금도 흐르지 않았음을 <캐스피언 왕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나니아를 아주 오랫동안 다스렸던 것 같지만, 그들이 옷장 문을 통해 돌아와 다시 영국에 있음을 발견했을 때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은 듯 했다. 그들이 떠나 있었음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고, 그들도 매우 지혜로운 어른 한 명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영국의 시간은 얇고 나니아의 시간은 두꺼움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이는 영국보다 나니아의 세계가 더욱 신의 세계 즉 영원에 가까움을 보여준다. 시간이 두껍다는 것은 시간의 무한한 현재에 더욱 근접하기 때문이다.

나니아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나니아 인들이 캐어 페러벨(Cair Paravel) 성에 있는 뿔 나팔을 불었고, 이 소리를 듣고 영국에 있는 페번시 가의 아이들이 그들을 돕기 위해 나니아에 다시 온다. 그들이 나니아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아슬란이 만든 '공중의 문'(a Door in the Air)을 통해, 떠날 때의 장소였던 영국의 기차 플랫폼으로 돌아왔을 때 "마치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것처럼" 정확하게 제자리로 와있었다. 영국의 시간이 단 1초도 흐르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나니아에 있는 동안 페번시 가의 아이들은 어른으로 성장한다. 나니아의 세계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변화란 시간이 흐르는 모든 세계에서 공통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니아에서 왕과 왕비로서 평화의 시대를 통치하며, 외모뿐만 아니라 사고와 인격도 함께 성장한다. 이들이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비록 그들의 복장과 외모는 이전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의 정체성과 정신은 나니아의 왕과 왕비였을 때의 성숙한 상태 그대로였다. 그들이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그들의 성숙한 정신까지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즉 나니아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일생동안 이들의 내적 동력과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가 나니아처럼 시공간이 다른 세계를 적극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더욱 깊고 더욱 높게' 성숙해지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두꺼운 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체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일직선의 시간을 한층 더 확대하고 강화시켜줄 것이다. 이를 위해 각자의 삶에 아슬란의 개입을 한번쯤 요청해보면 어떨까?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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