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계 통해 독자의 가치관에 통찰력 제시
[ 루이스다시읽기 ]
작성 : 2019년 10월 07일(월) 16:17 가+가-
<6> 판타지 문학과 스페이스

루이스는 1930년부터 1963년 눈을 감을 때까지 삶의 대부분을 이곳 킬른스에서 보냈다.(The Kilns, Headington, Oxford, OX3 8JD, UK)

스페이스(space, 공간)는 판타지 문학의 핵심 요소로 작품의 주제를 형상화시키며 전체적인 분위기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니아 연대기>의 주요 스페이스인 나니아는 우리의 실제 세계와는 '다른' 세계, 즉 판타지의 세계이다. 루이스는 독자들을 영(spirit)의 세계로 인도하는 상징적인 도구로 '다른' 세계를 활용하고 있다. 스페이스를 통해 그의 자연관과 선악관은 물론이고 창조와 같은 신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의 판타지 문학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관, 즉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과 가치관 뿐만 아니라 신선한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세계에 대한 아이디어는 조지 맥도날드(George MacDonald)와 윌리암 모리스(William Morris)와 같은 작가들에 의해 탐구되어 왔으며, 이들의 작품들은 일생동안 루이스를 매료시켜온 이상적인 모델이 되었다. 루이스는 잘 구성된 스토리와 플롯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독자들이 탐구할 이상적인 세계를 창조하기를 원했다. '다른' 세계는 이국적이고 이질적이면서도 동시에 독자들에게 친숙한 것이어야 했다. 그래야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다른 세계' 즉 영적인 세계를 그려야만 했다. 루이스의 판타지 문학에서 스페이스는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독자들을 영적인 세계로 안내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루이스는 문학 작품에서 스페이스가 갖는 힘과 영향력을 중시했다. 스페이스는 '시간'과 더불어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스페이스가 만들어내는 감각적이고 정서적이며 지적인 상상력은 작품의 톤(tone, 분위기)을 만들어낸다. 더 나아가 독자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다른' 세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갈망을 이끌어낸다. 루이스에 의하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스페이스여야 한다. 그는 독자들로부터 강렬하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을 스페이스를 활용해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그에게 스페이스는 바로 비유와 상징의 보물창고였다. 독자들이 '다른' 세계인 나니아의 세계를 탐구하는데 몰입하고 흥분하는 바로 그 중심에는 생생하고 풍부한 상상력의 산물인 스페이스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나니아의 창조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마법사의 조카>에서 스페이스의 한 예를 찾아보자. 나니아의 창조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이며, 다음 책인 <마지막 전투>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 창조의 상징적인 의미는 매우 성경적이며 하나님의 우주 창조를 연상시킨다. 아슬란은 암흑의 나니아에 별과 행성들을 창조함으로써 빛을 가져온다. 이어서 하늘, 바람, 언덕 그리고 해가 나타난다. 방문객들은 새롭게 창조된 너무나 멋진 천상의 풍경들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이러한 스페이스를 이용하여 루이스는 제이디스(Jadis)의 마법과 아슬란(Aslan)의 창조 이야기를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디고리(Digory)와 폴리(Polly)는 '두 세계 사이의 숲'(The Wood Between the Worlds)을 두 번째 방문해서 미지의 신비스러운 세계인 아슬란이 창조한 나니아로 뛰어든다. 루이스의 묘사의 극히 일부라도 직접 경험해보자.

"It was a valley through which a broad, swift river wound its way, flowing eastward towards the sun. Southward there were mountains, northward there were lower hills. But it was a valley of mere earth, rock and water; there was not a tree, not a bush, not a blade of grass to be seen. The earth of many colors; they were fresh, hot, and vivid."

"폭이 넓고 유속이 빠른 강이 태양을 향해 동쪽으로 구불구불 흐르고 있는 계곡이었다. 남쪽으로는 산들이 그리고 북쪽으로는 낮은 언덕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계곡에는 흙과 바위 그리고 물만 있을 뿐이었고, 나무 한 그루, 관목 한개, 풀잎 하나 보이지 않았다. 흙은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었으며, 신선하고 뜨겁고 생생했다."

스페이스에 관심을 갖고 루이스의 판타지 문학을 다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작품의 넓이와 깊이가 분명히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작품이 끝없이 다층적으로 해석될 것이며, 루이스가 본 것 너머에 있는 것까지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스페이스는 분명히 루이스의 상상의 세계에 동참하고 공감하는 주요한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옷장'(The Wardrobe)과 <마지막 전투>의 '마구간'(The Stable)처럼, 현실의 세계보다 작품 속의 세계가 훨씬 더 넓고 더 크게 보일 것이다. 그 세계가 바로 루이스가 일생동안 추구한 '다른' 세계, 즉 천국의 모형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 만들고 다듬어 갈 자신만의 스페이스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니아를 애써 만든 루이스 스스로 그 곳을 '그림자땅'(Shadowlands)이라고 지칭한 이유가 명확해 보인다. 유난히도 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이 밤에 나만의 나니아가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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