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길이뿐 아니라 두께로 보는 독특한 시각
<7> 판타지 문학과 시간 (1)
작성 : 2019년 10월 14일(월) 09:50 가+가-

루이스 고향인 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조성돼 있는 루이스 스퀘어. 루이스가 옷장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비롯해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형상화했다./출처 https://visitbelfast.com



루이스는 <기적>(Miracles)에서 시간을 "우리의 인식의 양식"(the mode of our perception)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시간에 대한 루이스의 다른 설명을 부연한다. 그는 <위대한 이혼>(The Great Divorce)에서 시간을 "렌즈"(lens)에 비유하고 있다: "시간은 인간이 강력한 망원경을 통해 보는 것처럼, 너무 커서 결코 볼 수 없는 것을 작고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바로 그 렌즈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는 <시편 사색>(Reflections on the Psalms)에서 시간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물고기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시간이 매우 빨리 흐른다고 놀라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이 축축하다고 계속해서 놀라는 것만큼 이상한 것이다. 물고기가 어느 날 육지 동물이 되지 않는 한, 그것은 정말 이상할 것이다."

루이스는 그가 쓴 마지막 책인 <말콤에게 쓴 편지: 주로 기도에 대하여>(Letters to Malcolm: Chiefly on Prayer)에서 시간에 대한 매우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신이 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직 지나가 버린 것이 없고 미래에 다가올 것도 없는 무한한 현재(an infinite present)를 누리는 것이라고 나는 확실히 믿는다 … 죽은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단순히 일직선이 아닌 시간을 경험할 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시간은 길이와 함께 두께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루이스는 시간의 '두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시간이 길이뿐만 아니라 두께도 가지고 있다는 시각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간을 두께의 관점으로 볼 때, 시간의 길고 짧음이나 빠르고 느림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주관적인 인식이기 때문이다. 즉, 시간의 두께에 따라 시간의 길고 짧음이나 빠르고 느림은 저절로 달라진다. 시간을 두께의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루이스는 '무한한 현재'를 강하게 '갈망'한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 '무한한 현재'를 끊임없이 계속해서 경험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루이스의 시간관은 다음과 같은 그의 주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현재 측량 가능한 하루, 일분, 또는 일초 안에서 영원(eternity)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길거나 짧은 시간의 길이로 잴 수 없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시편 사색>. "우리들에게 현재는 항상 과거가 되지만, 그러나 각각의 현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말콤에게 쓴 편지>

루이스에게 있어서 영원은 결코 길이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영원이란 시간의 길이를 넘어선, 시간의 두께의 개념 속에서 만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영원을 우리의 현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간의 길이와는 상관없이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루이스는 영국 국영방송인 BBC에서 한 방송 강연 원고를 책으로 묶어 출판한 <단순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시간에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그 일부 내용을 여기에 인용 한다:

"거의 확실히 신은 시간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삶은 순간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 태초부터 계속 이어져온 모든 순간들은 신에게는 항상 현재(the Present)이다 … 신은 시간 선상의 밖에(outside) 그리고 위에(above)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에게는 우리가 '내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가 '오늘'이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하게 보일 것이다. 신에게는 모든 날들이 현재(Now)이다." 즉, 신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개념이 없다. 이러한 개념은 시간 안에 존재하는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이다. 신에게는 무한한 현재라고 하는 하나의 커다란 그림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루이스는 자신의 이러한 시간관을 바로 <나니아 연대기>를 통해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즉 시간을 길이뿐만 아니라 두께로 보는 매우 독특한 시간관을 특별히 아슬란에게 투영시키고 있다. 독자들은 아슬란을 통해 시간의 두께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가 있다. 다음 호에서는 루이스의 시간관이 <나니아 연대기>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비록 정해진 시간의 체인 안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 순간을 영원처럼 살기 위해서는 시간을 길이로만 보지 않고, 루이스가 제안한 두께로 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하든지 '빨리 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특히 필요한 관점이라고 생각된다. '빨리 빨리'는 시간을 길이로 보는 산물이기 때문이다. 루이스가 시간을 '우리의 인식의 양식'이라고 말한 것은, 우리가 시간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의미이다. 즉 시간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일 뿐이다. 시간의 두께는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다.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과감하게 바꿔 써 볼 것을 권한다. 분명 길이와 속도에 자유로운 다른 세상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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