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세계, 영의 세계를 갈망하도록 인도
[ 루이스다시읽기 ]
작성 : 2019년 10월 28일(월) 11:31 가+가-
<9> 판타지 문학과 시간(3):아슬란의 직접 개입

루이스와 아내 조이.

'판타지 문학과 시간'에 대한 3회에 걸친 연재를 '아슬란의 직접 개입'이라는 소주제를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슬란은 때로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자신의 입김으로 아이들을 이동시키기도 한다. 또한 '공중의 문'이나 하늘을 찢어 나니아에서 영국으로 혹은 영국에서 나니아로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아이들을 이동시킨다. 심지어 나니아 세계 내에서도 옛 나니아와 새 나니아 사이를 이동시키기도 한다.

아슬란이 시간에 직접 개입하는 이러한 모습을 <새벽 출정호의 항해>(The Voyage of the Dawn Treader)에서 살펴보자: "가자, 내가 하늘 문을 열겠다. 그리고는 한 순간에 (커튼이 찢어지듯이) 푸른 벽이 찢어졌고, 하늘 너머에서 무시무시하게 하얀 빛이 쏟아졌다. 아슬란의 갈기와 사자의 키스가 이마에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캠브리지에 있는 알버타 이모의 침실로 돌아와 있었다." 에드먼드, 루시, 그리고 유스터스가 나니아의 세계에서 영국으로 돌아올 때, 아슬란은 하늘 문을 열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들을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은 의자>(The Silver Chair)에서도 두 주인공인 질과 유스터스는 아슬란의 직접 개입으로 시간의 두께를 경험한다. 그들은 체육관 뒤의 "문을 통하여 학교 밖으로, 영국 밖으로, 그리고 그들이 사는 세계 밖으로" 빠져나와서 나니아 세계에 들어간다. 그들은 아슬란이 내뿜는 입김 덕분에 나니아에 안착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캐스피언 왕자와 다시 해후하는 장면을 살펴보자: "나니아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게 흐른다. 만약 네가 나니아에서 백년을 지내더라도, 네가 떠난 바로 그 날 그 시간에 우리 세계로 되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네가 여기(우리 세계, 지구)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나니아로 다시 간다면, 나니아의 세계에서는 천년이 흘렀을 수도 있고 단지 하루가 흘렀을 수도 있고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네가 그 곳(나니아)에 가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가 없다." 실제로 이들이 나니아를 떠난 지는 1년이 되었다. 즉 <캐스피언 왕자>(Prince Caspian)에서 이들은 캐스피언 왕자의 대관식 직전에 떠났는데, <새벽 출정호의 항해>에서 다시 나니아에 돌아와 보니 그 사이에 나니아는 "정확히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두 세계간의 시간의 길이와 두께가 다를 뿐만 아니라, 전혀 규칙적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즉,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누구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신비 그 자체였다.

<마법사의 조카>(The Magician's Nephew)에서 아슬란은 나니아의 건국과 왕의 대관식을 모두 마치고, 디고리, 폴리, 그리고 앤드류를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게 해준다. 이들이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 타이밍은, 시간의 흐름이 전혀 없이 그들이 떠난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모든 모험을 하는 동안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음을 나는 믿는다."

<마지막 전투>(The Last Battle)에서 질과 유스터스는 '시간의 아버지'(Father Time)의 존재를 다시 기억한다. 사람들의 예언대로 시간의 아버지는 나니아의 종말에 깨어난다. 아슬란은 "그가 자고 있었을 때 그의 이름은 시간이었다. 그가 깨어난 지금 그는 새로운 이름을 가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아슬란은 시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단지 꿈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루이스는 시간의 아버지를 통하여 나니아 세계의 종말을 선언한다. 시간의 아버지는 나니아를 멸망시키라는 아슬란의 명령을 수행한다. 나나아의 종말은 곧 시간의 종말이며, 이것은 바로 영원의 시작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아슬란과 함께 생활했던 나니아는 진정한 나니아(Real Narnia)가 아니었다. 그 나니아는 이 세계처럼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 곳이었고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루이스의 표현을 빌면 "그림자나라"(shadowlands)였던 것이다.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 7권의 모든 여정과 그 속에서의 많은 과정들을 통하여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고 동시에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모습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무한의 세계, 영의 세계를 갈망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진정한 나니아의 세계는 무한한 현재만이 존재하는 곳인 것이다.

판타지 문학과 시간에 대한 글을 맺고자 한다. 스코틀랜드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제임스 베리에 의해 태어난 피터 팬은 네버 랜드에서 영원한 소년으로 살고 있다. 또한, 많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시간에 대한 오랜 논의를 거쳐서, 아인슈타인의 시간에 대한 설명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절대적 시간 즉 모든 시간에 절대는 없다. 관찰자가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시간은 관찰자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다만 현실에서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가 없으므로 시간이 절대성을 갖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동양의 경우는 어떠한가? 공자는 시간 너머의 세계인 유토피아를 과거에서 찾았고 공양학파는 미래에서 찾았다.

시간은 스페이스와 함께 우리 삶과 문화의 핵심 축이다, 특별히 21세기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디에서 네버랜드, 유토피아, 나니아, 또는 페렐랜드라를 찾고 경험할 것인가?

너무나 컬러풀하고 아름다워서 더욱 짧게만 느껴지는 이 가을에 아슬란의 개입이 가슴이 시리도록 그리워진다. 솜털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오후 햇살이 나니아의 아이들을 불러왔으면 하는 갈망이 이 달콤한 가을에 더욱 깊어만 간다.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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