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연대기, 색의 이분법으로 '선과 악' 표현
<10> 판타지 문학과 색깔(1)
작성 : 2019년 11월 11일(월) 11:44 가+가-
깊은 우정과 형제애를 나눴던 형 워렌 루이스(오른쪽)와 함께.


루이스는 특별히 색깔(color)에 매우 민감한 작가였다. 루이스의 뛰어난 스타일이, 본 것을 글로 쓰는 그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 (필자의 2회 차 글, '눈으로 본 것을 글로 옮기기'를 참고)에서 기인하는데, 그 바탕에는 바로 색깔에 대한 그의 관심이 있었다. 루이스는 글을 쓰기 전후에 스케치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즉 자신의 생각을 먼저 시각화하여 눈으로 보고, 본 것을 글로 옮기는 것을 즐겨했던 것이다. 사람의 감각 중 특히 시각으로 감지하는 색깔에 대한 그의 남다른 통찰은 그가 쓴 작품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나니아 연대기>도 예외가 아니다. 색깔을 염두에 두고 <나니아 연대기>를 읽으면 훨씬 많은 것들을 생생하게 보게 될 것이며, 작품의 톤(분위기)과 느낌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문학작품에서 색깔이 주는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색은 단순히 색상, 명도, 채도의 차이만이 아니고, 사람의 심리와 정서 그리고 문화 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색이 종종 '상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색에 대한 상징은 사람의 색에 대한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편 색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나 상징성은 작가나 독자 모두 그것을 어떻게 인지하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

색은 크게 무채색과 유채색으로 나뉜다. 무채색은 채도가 0이 된 색이고 사실상 빛의 세기만을 나타낸다. 즉, 명도만 있는 것으로 검은색, 회색, 흰색 등이 이에 속한다. 그 외의 색들은 유채색이다. 무채색과는 다르게 유채색은 일반적으로 화려하고 다채롭다.

루이스는 색의 이러한 이분법을 <나니아 연대기>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나니아의 세계는 악한 하얀 마녀(the White Witch)가 지배하는 나니아와 선한 아슬란(Aslan)이 통치하는 나니아로 나눌 수 있는데, 이러한 두 나니아의 세계에 대해 주로 사용되는 색깔은 명확하게 구분된다. 즉, 마녀의 지배 하에 있던 나니아는 무채색이 주를 이루고, 아슬란이 통치하는 나니아는 유채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선과 악이 색의 이분법으로 명료하게 표현된 작품이 바로 <나니아 연대기>이다. 루이스는 자신이 본 것을 그저 글로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고, 더 나아가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색깔을 통해 감각적으로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색은 선과 악에 대한 루이스의 통찰을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작품의 주제를 한층 강화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나니아 연대기>의 독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색은 아마도 무채색인 흰색일 것이다. 특히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전반부의 주도적인 색은 단연 흰색이다. 나니아 세계는 마법으로 인해 오랫동안 겨울만 지속되어서 온 세계가 흰색의 눈으로 덮여있었다. 거기다가 마녀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흰색이고, 마녀가 탄 마차도 온통 흰색이었다. 흰색외의 색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흰색의 세상이었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접하는 독자의 첫 느낌은 '하얗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흰색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흰색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표적으로 많이 사용되어 온 색이다. 공인의 청렴, 새로운 탄생, 순수와 순결, 천상의 빛, 성직, 성인, 신적인 영광 등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상징적 의미가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위에 나열한 것처럼 흰색은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는 마녀가 지배하는 나니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색으로 흰색이 사용되고 있다. 즉, 흰색이 전통적인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정반대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흰색에 대한 루이스의 확고한 생각은 나니아의 창조 이야기인 <마법사의 조카>에서도 볼 수 있다: "마녀는 전보다 더 강하고 더 교만해 보였다. 심지어는 승리한 듯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극도로 창백했고(deadly white) 소금처럼 하얀색(white as salt)이었다." 루이스는 흰색을 마녀를 묘사하는 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도 마녀를 "지독하게 하얀"(terribly white) 또는 "창백한"(dead-white)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빛에 의한 명도도 없이 단순히 흰색의 다양한 강도로만 묘사함으로써, 선함도 없고 감정도 없는 마녀의 내적 상태를 색과 수식어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는 나니아의 극적인 변화 즉 마녀의 지배로부터 아슬란의 통치로 바뀐 사실을, 색을 이용하여 단 한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모든 극도의 흰 색깔(all that deadly white) 대신에, 뜰은 이제 형형색색의 색깔들(a blaze of colors)로 가득했다." 나니아의 근본적인 변화를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의 색깔의 변화로 묘사하고 있는 이 장면은 색의 상징적 의미가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색깔은 작품의 핵심요소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특히 이 아름다운 가을은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 색깔들로 가득 차 있는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보고' '느끼고' '음미'해보면 어떨까? 혹시라도 색에 대해 당연시하던 우리의 태도와 의식이 있다면, <나니아 연대기>를 (다시) 읽으면서 한번 뒤집어보는 시도를 해보기를 강추한다. 루이스의 작품이 주는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볼 때 가장 큰 혜택은, 틀에 박힌 평범한 일상에 활기와 경이(wonder)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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