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하는 것은 소유하고 있는 것들 중 최고의 것
<3> 환희와 갈망, 루이스의 삶과 글의 핵심 주제
작성 : 2019년 09월 16일(월) 17:08 가+가-

루이스와 아내 조이.

환희(Joy)! 바로 루이스의 삶과 글의 정중앙을 관통하고 있는 일관된 주제이다. 갈망(Sehnsucht)! 환희와 곧바로 연결되는 루이스의 삶의 자세이고 핵심 사상이다.

루이스는 1955년에 발표한 자서전 'Surprised by Joy'(예기치 못한 기쁨, 홍성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초록 언덕들('the Green Hills')이 매일 그 곳에 있었고, 어린 우리는 방의 창문을 통해 바라볼 뿐이었다. 비록 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우리들은 결코 그 곳에 갈 수가 없었다. 초록 언덕들은 나에게 갈망('longing-Sehnsucht')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6살이 되기 전의 일이었다." (글쓴이의 번역)

위의 인용에서 루이스가 사용한 독일어 'Sehnsucht'에 대해 살펴보자. 이 단어는 'Sehn'과 'Sucht'의 결합형이다. 'Sehn'은 동사 '그리워하다,' '동경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sehnen'에서 기원했고, 'Sucht' 는 '중독' 또는 '벽(癖)'이라는 뜻의 여성 명사이다. 즉 'Sehnsucht'는 '뭔가를 병적으로 그리워하다'라는 의미이다. 굳이 번역한다면, 영어의 'longing' 또는 'yearning', 그리고 우리말의 '갈망'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독일어 단어를 길게 설명한 이유는 루이스가 이 단어를 자신의 자서전에서 직접 사용하기도 했지만, 환희(Joy)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 예술,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준 18세기 및 19세기의 독일 낭만주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Sehnsucht'의 개념은 독일어 문화권에 명확하게 녹아있다. 하지만 영어 문화권에서는 이 개념이 아주 약하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루이스는 자신이 뜻하는 의미를 보다 더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영어대신 이 독일어를 선택한 듯하다.

루이스가 쓴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환희와 갈망의 개념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Till We Have Faces'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홍성사)에서 한 장면만 인용하도록 하자. 루이스의 글을 지적으로(intellectually)만이 아니고, 감정적으로(emotionally) 그리고 감각적으로(sensorially) 함께 공감하고 즐기는데 도움을 주기위해 원문과 필자의 번역을 함께 싣는다.

"It was when I was happiest that I longed most. It was on happy days when we were up there on the hills, the three of us, with the wind and the sunshine … where you couldn't see Glome or the palace. Do you remember? The colour and the smell, and looking across at the Grey Mountain in the distance? And because it was so beautiful, it set me longing, always longing. Somewhere else there must be more of it. Everything seemed to be saying, Psyche come! But I couldn't (not yet) come and I didn't know where I was to come to. It almost hurt me. I felt like a bird in a cage when the other birds of its kind are flying home."

"나(푸쉬케)는 최고로 행복할 때 가장 강렬하게 갈망했지요. 우리 세 사람이 바람과 햇볕을 받으며 언덕에 올라갔던 그 시절이 행복했어요. 그 곳에서는 글롬도 왕궁도 눈에 띄지 않았어요. 기억하나요? 그 색깔 그리고 그 냄새, 또한 멀리 보이던 회색 산을 말이죠?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로 하여금 갈망하도록, 항상 갈망하도록 만들었지요. 어딘가에 분명히 더욱 더 많이 있을 거 에요. '푸쉬케, 이리 오렴'하고 마치 모든 사물들이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나는 (아직) 갈 수가 없었고, 또한 어디로 가야 하는 지도 몰랐어요. 정말 괴로웠어요. 마치 다른 모든 새들이 집을 향해 날아가는데, 새장 안에 홀로 갇혀있는 새와 같은 느낌이었어요."

나는 'Sehnsucht'를 '가라앉힐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으면서, 결코 이룰 수 없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갈망'으로 정의한다. 이 땅에서의 상태가 바로 이 '갈망'의 상태인 것이다. 루이스에게 환희는 곧 천국이며, 또한 천국에만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환희는 깜깜한 밤 북두칠성의 역할을 완벽하게 하고 있다. 루이스에게 환희의 궁극적인 대상은 '적나라한 타자(the naked Other)'로 성큼 다가온다.

루이스가 부인 조이 데이빗먼(Joy Davidman)과 사별하고 난 후에 쓴 시의 제목이 'Joys That Sting'(침으로 쏘는 환희)이다. 14행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임에도 불구하고, 루이스의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관심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에 대한 논의는 '고통'(pain)을 주제로 한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루이스의 말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최고의 것이다." 곱씹으면 씹을수록,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 속에서 시류를 거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위로와 도전을 동시에 주는 루이스의 고백이고 혜안이다. 비가 오고 난 후의 부드럽고 촉촉한 이 아침 시간에, 루이스와 함께 얼 그레이 티를 즐기면서 환희(Joy)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싶은 갈망(Sehnsucht)이 가득하다.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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