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 얻기 위한 방법이 잘못됐다면 '악한 것'
[ 루이스다시읽기 ]
작성 : 2019년 12월 03일(화) 08:00 가+가-
<13> 판타지 문학과 악(2)

1947년 9월 8일자 타임지에 실린 루이스.

루이스에 의하면 악을 위해 악을 행하는 사람은 없다. 악을 행하는 이유는 그 뒤에 따라오는 유익과 즐거움 때문이다. 유익과 즐거움 자체는 좋은 것이다. 만약 좋은 것이 없다면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루이스는 말한다. 그러나 좋은 것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악한 것이 된다. 우리가 악하다고 인식하는 대상은 선한 것들이 결핍되거나 변질되고 왜곡되어 나타난 것이다.

루이스의 우주 삼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프렐렌드라>에는 악이 전혀 없으며, 이곳의 유일한 인간인 초록 여인은 악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곳에는 오직 선한 것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프렐렌드라에 사는 인간에게도 이성과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악이 들어올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자유의지가 선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고 하나님의 선함을 한층 더 선명하게 부각시키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악이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은 항상 열려있다.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하는 악한 캐릭터들 역시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때로는 선한 캐릭터들보다 더욱 이성적인 행동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을 선택하지 않음으로 악의 길로 접어들고 만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나니아를 창조한 아슬란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슬란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자아의 세계에 갇히게 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하얀 마녀는 물론이고 <마지막 전투>에서 나니아를 파괴한 거대한 용들과 도마뱀들도 예외가 아니다.

나니아의 창조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마법사의 조카>에 나오는 마녀는 마법의 정원에 생명의 열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문을 통해서만 들어오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담을 넘어와서 마음껏 열매를 따먹는다. 타인을 위해서만 열매를 따야 한다는 경고도 무시한다. 그녀는 중요한 두 경고를 모두 어기면서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일방적으로 추구한다.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마녀는 처음부터 자신만을 위해 자유의지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마녀는 찬(Charn) 제국 전체에 마법을 건다. 그녀는 아무런 죄도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 자신은 지배자로서 모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훨씬 더 화려하게 차려입은 한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키가 매우 컸으며 무지무지하게 사납고 교만해보여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마녀가 바로 하얀 마녀인 제이디스이다. 찬 제국에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대가가 차곡차곡 쌓여갔고,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된다.

디고리와 폴리가 찬 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곳은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 등장하는 하얀 마녀의 성처럼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고 어떠한 움직임도 전혀 없었다: "이곳은 죽은 듯이 차갑고 텅 빈 적막뿐이었다. 이곳에서 무엇인가 자라고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 그들은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 분명히 이곳은 몇 백 년 어쩌면 몇 천 년 동안 버려진 곳이었을 것이다 … 개미나 거미 또는 폐허에서 볼 수 있는 움직이는 것들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풀도 이끼도 없었다."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곳, 바로 악의 속성과 악의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캐스피언 왕자>에 등장하는 검은 난쟁이(Dwarf)인 니카브릭은 아슬란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미라즈 왕의 압제로부터 자신을 구해줄 수만 있다면 악한 힘이든 선한 힘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니아를 100년 동안이나 겨울로 만든 하얀 마녀를 다시 불러내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힘(power)을 원해. 우리 편이 되어줄 힘을 원해 … 그것은 실제적인 것이야. 그녀(마녀)는 비버들을 다 몰아냈어. 내 말은 … 그녀는 우리 난쟁이들과 사이좋게 지냈어. 나는 난쟁이고 난쟁이들 편이야." 니카브릭은, 마녀가 악한 존재라는 것과 난쟁이 외의 다른 동물들에게 악한 짓을 한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 선과 악의 기준은 바로 자신이고 자신의 이해관계였던 것이다.

<말과 소년>에서 타쉬(Tash) 신을 섬기는 칼로맨(Calormen) 사람들은 매우 근엄하고 잔인하다. 주인공 샤스타(Shasta)는 묻는 말에 대답했다는 이유만으로 얻어터진다. 샤스타만 이렇게 당한 것이 아니었다. 칼로맨 왕국 전체가 냉혹하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통치되고 있었다. 칼로맨 사람들은 겉으로는 사치스럽고 화려해보이지만 즐거움과 웃음이 없었다. 이들이 섬기는 신 타쉬는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받는 잔인한 신이다. 이들은 동정심이나 배려가 전혀 없다. 오히려 약자들을 노예로 부린다. 이들에게는 사랑의 흔적이라고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악의 상징인 초록 마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 세계는 절대로 없다. 내 나라만 있을 뿐이다 … 나니아도 없었고, 지상세계도 없었고, 하늘도 없었고, 태양도 없었고, 아슬란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도 매력적으로 차려입은 악은 우리 옆에서 달콤한 초록색 가루를 뿌려대고 있다. 우리를 몽롱하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매혹적인 음악을 우리 귀에 끊임없이 연주하고 있다. 정말 나니아도 없고 아슬란도 없는 것일까? 선택은 결국 우리 각자의 몫이다.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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