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의 평범성에 관하여
[ 12월특집 ]
작성 : 2022년 12월 13일(화) 15:47 가+가-
주제로 읽는 2022년 & 2023년 목회 과제 3.자연재해로 남은 ‘상처'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의 관계를 안다면

자연재해는 태풍, 홍수, 호우, 강풍, 풍랑, 해일, 대설, 낙뢰, 가뭄, 지진, 황사, 조류(藻類) 대발생, 조수(潮水), 화산활동, 그밖에 이에 준하는 자연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모든 재해를 가리킨다('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 제3조). 대부분의 자연재해는 '기후변화'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기후변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연재해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김치 없이 김치찌개를 끓일 수 없는 것과 같다.

아래 도표는 BBC와 CNN 등의 언론이 신뢰하고 하버드와 옥스퍼드 대학이 교육자료로 참고하는 웹사이트 'ourworldindata.org'에서 가져왔다. 1900년부터 2019년까지 자연재해 피해자 숫자가 막대그래프에 반영되어있다. 1960년대부터 막대그래프가 눈에 띄게 잦아지고 길어진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를 보면 키작은 막대그래프들조차 1억 명 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어째서, 왜, 하필이면 자연재해로 상처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숫자를 표시하는 긴 막대그래프들이 유독 1990년대 이후로 촘촘히 몰려있는지,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기후가 평범한 일상이 된 것을 의심하며

돌아보건대 저 도표에 아직 통계로 들어가지 않은 2022년 올 한 해에도, 우리는 가뭄, 폭우 등 극단적 기후현상에 대한 기사들을 이전보다 더 많이 보았고 더 자주 들었다. 불과 몇 달 전 9월엔 파키스탄에서 엄청난 물난리로 30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보다 앞선 8월에는 유럽의 몇 나라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갑작스러운 폭우로 많은 이들이 목숨과 재산을 잃었다. 예방조치가 적절치 못해 재해규모가 더 커졌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 지구적으로 볼 때 자연재해의 파급양상과 발생빈도 자체가 해마다 증폭되어가는 게 사실이다. 이를테면 이상고온, 이상저온 같은 이상기후 현상이 더는 '이상'이 아니라 일상 다반사가 된 것 같은 형국이다.

지구촌 곳곳 어디에서든 극단적 기후가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위의 도표에서 보듯 1990년대 이후 자연재해가 일상다반사인 양 빈번하니, '으레 그러려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다윗 왕의 반지에 새겨져 있었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는 경구(성경말씀 아님)를 읊조리는 분들마저 생겨났다. 그런데,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은가? 어째서, 이상한 일이 계속되는데 이상하다 느끼지 않는 것인가?

인류문명 발달사를 다룬 『총, 균, 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기후변화가 '풍경 기억상실(landscape amnesia)'을 자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머리카락이 매일 조금씩 자라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변화를 바로 알아채지만, 매일 보는 사람들의 경우 머리카락 길이의 미묘한 자람을 얼른 실감하기 어렵듯, 지구온난화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를 우화(fable)로 표현한 지구온난화 서사는 유명하다. 냄비 속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에 들어앉은 개구리, 이상스럽게 따뜻해지는 걸 이상한 따뜻함으로, 현실 그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천진난만한 개구리 말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자 "깨어있어야"

20세기 중반에 세상을 떠났지만 21세기 들어 유력한 정치이론가로 다시금 의미있게 호명되며 인용되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용어를 제출한 적이 있다. 이 '악의 평범성'은 평범한 사람들을 '잠재적 악인'으로 손가락질하기 위해 조합된 용어가 아니다. 또 아이히만같이 악행에 포섭됐던 평범한(?) 사람을 면죄해주고자 조합된 용어도 아니다. 그러니 '평범한 나도 악인이란 말이냐?'면서 화낼 필요도 없고, '내가 악행을 저지른 건 내가 평범하기 때문이야'라며 안도할 까닭도 없다. 요컨대 '악의 평범성'은, 악이 한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평범하게 발현된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만일 악이 평범하지 않은 때에 평범하지 않은 곳에서 평범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타난다면, 바꿔 말해 '튀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하면, 악은 나타난 즉시 발견될 것이고, 사람들은 주저없이 악에 대응할 것이다. 문제는 악이 튀지 않고 평범하다는 데에 있다.

이처럼, 만일 20세기 들어 나타난 현상으로서 '악의 평범성'이 문제적이라면, 역시 20세기말부터 잦아진 이상기후를 이상하다 느끼지 않게 된 '이상기후의 평범성'도 문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상기후를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상스레 따뜻해진 것을 이상한 따뜻함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마음이 문제다. 이상스레 자연재해가 잦아지고 심각해진 것을 이상한 징조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바로 그게 문제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적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눅12:54-57).

예수께서 호명하신 "외식하는 자"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도매금으로 한데 묶이지 않으려면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의 '이상스러움'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예'라고 해야 할 때 '예'라 하고 '아니오'라고 해야 할 때 '아니오'라 해야 하는 기독교인들은(마5:37), 작금의 기후상황이 이상하냐 물을 때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2022년 현재 우리 교회들이 주님 당부하신 대로 정녕 "깨어있어야" 하리라.

이인미 박사/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연구실장,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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