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이 철학을 만날 때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작성 : 2019년 05월 24일(금) 00:00 가+가-
<2> 신학과 철학의 관계 논쟁
 
그리스도교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 아래에서, 종교적으로는 유대교라는 모판 위에서, 사상적으로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 안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은 진공상태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로마, 그리스철학이라는 맥락 한복판에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신학과 철학의 만남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신학과 철학, 계시와 이성,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하는 난제는 그리스도교 2천년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오늘날 성경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유스티누스.
순교자 유스티누스(c.100~165)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철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신학을 수립하고자 한 최초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100년경 플라비아 네아폴리스(Flavia Neapolis: 구약시대의 '세겜'으로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나블루스')에서 태어난 그는 에베소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순교를 목격한 후 감명을 받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고 이후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하여 그리스도교 변증가로 활동하다가 순교하였다. 그는 제1변증서, 제2변증서,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 등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무신론자이고, 부도덕하고,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선동하는 자들이라는 오해에 대해 반박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복음을 변증하였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교야말로 "참된 철학"이라고 확신했으며, 그리스도교 신학을 철학적 방법과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논증하려고 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그리스도교 최초의 철학적 신학자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150~215)

유스티누스의 뒤를 이어 신학 연구에 철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사용한 인물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이다. 그는 철학도 "하나님이 그리스인들에게 준 선물"이고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에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이 발견한 진리도 사실상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따라서 플라톤은 "그리스도 이전의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기에 클레멘스는 종종 자신의 글에서 "진실로 사랑하는 플라톤"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다. 클레멘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야말로 최고의 철학이며, 가장 고상한 철학이었다.

클레멘스는 철학이 복음을 위한 유용한 도구라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모세의 율법이 히브리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킨 하나님의 섭리였다면, 그리스의 철학은 그리스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하나님의 섭리였다. 클레멘스가 당시의 이교적 철학과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와 수용을 통해 복음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를 근대 '자유주의 신학의 선구자'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클레멘스는 철학이 이단 문제와 관련해서도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그는 당시 영지주의와 마르키온주의와 몬타누스주의 같은 이단적 사조들에 맞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옹호하는 데 철학이 유용할 뿐만 아니라 이미 이단에 빠진 사람들의 치료에도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클레멘스는 그리스도교 신학을 정립하는 일에 철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c.150~212)

카르타고의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신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해 클레멘스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라틴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단논박에서 철학은 세상의 헛된 지혜이며 이단의 원천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예루살렘이 아테네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교회가 플라톤학파의 아카데미와, 그리스도인이 이단들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라며 여러 차례 되물었다. 그는 "나는 스토아주의나 플라톤주의나 변증론에 근거한 그리스도교를 싫어한다"며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동시대를 살았던 클레멘스와 테르툴리아누스는 신학과 철학의 관계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클레멘스가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고 생각한 반면에, 테르툴리아누스는 하나님의 계시를 벗어난 진리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클레멘스가 인간 이성을 긍정적으로 본 반면에, 테르툴리아누스는 이성의 능력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철학적 논리를 그리스도교 신앙에 끌어들이게 되면 결국 우상숭배나 위험한 혼합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고 믿었다. 굳이 현대적 표현을 빌리자면 클레멘스의 입장이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에 가깝다면, 테르툴리아누스의 입장은 오늘날 보수주의, 심지어 근본주의 신학에 가까울 것이다. 클레멘스와 테르툴리아누스 모두 철학과 신학의 적절한 관계성을 찾는 데 관심을 기울였지만, 그들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

이성을 활용한 철학적 신학을 거부한 테르툴리아누스가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정통교리를 확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공헌을 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이다. 그는 마르키온에 대항하여, 프락세아스 반박문, 변증론, 이단논박 등을 통해 서방 그리스도교 신학의 뼈대를 형성하였다.



정체성과 적합성 사이의 균형을 찾아서

그리스도인이 진공상태가 아니라 문화라는 토양 안에 살고 있음을 생각할 때, 복음과 문화, 계시와 이성, 신학과 철학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교 복음의 정체성(identity)을 보다 강조하고, 또 다른 사람은 복음의 현실 적합성(relevancy)에 더 무게를 둘 것이다. 복음의 본질과 정체성을 순수하게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 복음이 현실을 바꾸려면 세상 속으로 녹아져 들어가 적합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가 옳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교 신학은 정체성과 적합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며 분투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혼합되거나 분리되지 않고 상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스도교 신학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씨름해 온 이 문제는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숙제이기도 하다.

박경수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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