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활절은 매년 다른 날에 지키는가?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작성 : 2020년 03월 31일(화) 15:46 가+가-
<12>부활절 날짜 논쟁
부활절은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을 기념하는 교회의 중요한 절기다. 부활절은 교회사의 가장 오래된 절기로, 이것을 중심으로 앞으로는 사순절이, 뒤로는 성령강림절이 교회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기준이 되는 부활절 날짜가 매년 달라지기 때문에 사순절과 성령강림절도 매년 달라진다. 성탄절은 항상 12월 25일인데, 왜 부활절은 매년 다른 날에 지키게 되는 것일까?

#부활절은 어떻게 정해졌는가?

부활절을 언제 지켜야 하는가를 놓고 초대교회에서부터 서로 다른 견해가 있어 왔다. 소아시아 지역의 동방교회는 음력을 따르는 유대력의 니산월(우리 달력으로는 대개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에 해당한다) 14일에 유월절을 지키는 유대인들의 풍습을 따라 부활절을 지키려고 했다. 이것은 주중의 어느 날이든 부활절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는 안식 후 첫날인 주일에 부활절을 지키려고 했다. 이들은 유대교 축제인 유월절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축제로서의 부활절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니산월 14일을 부활절로 지키려는 '14일파'와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려는 '주일파' 사이에 논쟁이 계속됐다. 2세기 중엽 사도 요한의 제자이자 스미르나(서머나, 현재 터키의 이즈미르) 감독이었던 폴리카르포스는 동방교회의 관습이 사도 요한에게서 기원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니산월 14일에 부활절을 지키자고 로마 감독 아니케투스를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2세기 말 로마 감독 비토리오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축일을 유대교의 유월절과 같은 날로 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와 교회의 통일성을 명목으로 소위 '14일파'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부활절 날짜 논쟁은 결국 325년 니케아공의회를 통해 일단락됐다. 니케아공의회는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여 '춘분 후 첫 번째 보름(음력 15일)이 지난 뒤 다가오는 주일'을 부활절로 지켜야 한다고 결정했다. 음력을 사용하는 교회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춘분과 보름 절기를 넣기는 했지만 부활절은 주일이어야 한다고 확정한 것이다. 따라서 춘분이 언제인지, 보름이 언제인지에 따라서 부활주일의 날짜는 매년 달라진다. 오늘날의 달력으로는 빠르면 3월 22일에서 늦으면 4월 25일 사이에 부활절이 오게 된다.

올해 2020년의 경우 3월 20일이 춘분이고, 그 후 가장 빠른 보름날은 4월 7일이기 때문에, 바로 그 뒤에 오는 4월 12일 주일이 부활주일이 된다. 부활절이 정해지면 이제 그 앞으로 40일(주일은 제외) 동안이 사순절이다. 따라서 사순절은 항상 수요일에 시작되며, 우리는 그 날을 '참회의 수요일' 혹은 '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른다. 부활절 뒤로 50일(주일도 포함)은 '기쁨의 50일'로 부활의 기쁨과 의미를 기억하는 기간이다. 그리고 50일째 되는 주일은 성령강림주일로 지키게 된다. 부활주일은 4월 12일이지만, 넓게 보아 부활절기는 부활절인 4월 12일부터 성령강림절인 5월 31일까지라 할 수 있다.

#부활절의 예식, 세례와 성만찬

초대교회부터 부활절의 가장 중요한 예식은 세례와 성만찬이었다. 초대교회의 세례와 성만찬에 관해서는 저자 미상의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과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에 비교적 잘 나타나 있다. 부활절에 세례가 베풀어진 것은 이제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산다는 세례의 의미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리는 부활절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에서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3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세례 준비자들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자신들의 신앙을 삶 속에서 증명해야 했으며, 세례를 위한 시험에 통과한 후에야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단지 교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생활 전반에서 진보를 나타내야만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과연 오늘날 세례를 앞두고 우리에게 이런 엄격한 교육과 준비과정이 있는가!

초대교회 전통에 따르면, 세례 받을 사람들은 고난주간 목요일에 목욕하고, 금요일에 금식한 후, 토요일 해가 진 시간부터 철야기도를 하다가, 부활주일 새벽에 세례를 받았다. 이때 물은 고여 있는 죽은 물이 아닌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나 위에서부터 흐르는 물' 즉 생수를 사용했다. 세례는 새로운 생명을 주는 성례이기에, 살아 있는 물로 행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세례는 세 번의 침수로 이루어졌는데,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주님이 부활하신 새벽, 그토록 간절히 준비하며 기다리던 세례를 받으면서 초대교회 성도들의 가슴이 얼마나 벅차올랐을지 짐작이 된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을 것이고, 그들의 가슴은 온전한 새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으로 충만했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세례 받을 때 이런 감격을 느끼고 있는가!

이제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성만찬 참여가 허용됐다. 초대교회 성만찬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성도들의 연합의 신비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초대교회의 특별한 점 가운데 하나는 성도들이 자주 무덤에 모여 성만찬을 거행했다는 것이다.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나 순교자들의 묘지에 모여 성찬예식을 행했던 것은 그들이 산 자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까지도 한 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듯이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었다. 여기에서 성도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부활, 우리 믿음과 소망의 이유

십자가 사건 이후 흩어졌던 제자들이 어떻게 다시 모일 수 있었는가? 부활이다. 부활이 없었다면, 교회는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믿음도 헛것(고전 15:14)"이다. 부활은 교회의 기초요, 복음전파와 믿음의 뿌리이다. 또한 부활은 소망의 이유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 15:20)"가 되셨기에,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박경수 교수 /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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