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정당한가?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작성 : 2020년 07월 24일(금) 10:49 가+가-
<16>유아세례 논쟁

츠빙글리와 후프마이어.



종교개혁 시기 성만찬과 더불어 유아세례 문제 또한 격렬한 논쟁의 주제였다. 그 출발점은 스위스 취리히였다. 1522년 사순절 금식 논쟁에서 촉발돼 이듬해 열린 공개토론회에서 로마가톨릭을 반대하며 함께 목소리를 높였던 츠빙글리 지지자들 중 일부가 유아세례에 의구심을 표하게 됐다. 이들은 결국 츠빙글리 지지파에서 이탈해 스위스형제단이라는 이름으로 독자 노선을 걷게 됐다. 이것이 소위 '재세례파' 즉 아나뱁티스트의 시작이다. 아나뱁티스트는 문자적으로 '다시 세례 받은 사람'(ana+baptist)이라는 의미다.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취리히의 개혁진영 내에서 분란이 일어나자, 1525년 1월 18일 취리히 시의회는 유아세례가 국가가 정한 법이며 따라서 이를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자들은 강력히 처벌할 것이라고 공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형제단은 1525년 1월 21일 취리히의 펠릭스 만츠의 집에 모여 유아세례는 아무런 효력도 없는 의식에 불과하므로 참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새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며 서로에게 '재세례'를 베풀었다. 역사적으로 이날이 바로 아나뱁티스트의 생일이다.



#츠빙글리 vs 후프마이어

유아세례 문제로 인한 분열 조짐이 수그러들지 않자 츠빙글리는 유아세례를 포함한 세례 전반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필요를 느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1525년 5월 27일 출판된 '세례, 재세례, 유아세례에 관하여'라는 팸플릿이다. 여기에서 츠빙글리는 재세례의 오류를 논박하고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곧이어 아나뱁티스트의 대표적 신학자 발타자르 후프마이어(1480/85~1528)의 반론이 제기됐다. 후프마이어는 1525년 7월 11일 '그리스도인 신자의 세례에 관하여'라는 팸플릿에서 츠빙글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유아세례의 허구성을 주장했다. 후프마이어가 단 5일 만에 쓴 이 글은 그가 남긴 저술 중 가장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523년 취리히 공개토론회에서 같은 편에 서서 로마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며 개혁을 주창했던 츠빙글리와 후프마이어 두 사람이 유아세례 문제로 인해 서로를 비판하는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고 말았다.



#논쟁의 주제들

그렇다면 유아세례 논쟁의 중요한 초점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성경에 유아세례에 관한 명확한 구절이 없다는 점이다. 후프마이어는 유아세례는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으며 중세 로마교회가 고안해 낸 미신적인 의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츠빙글리는 성경에 유아세례에 대한 명시적인 명령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유아세례가 거부돼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만일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만 해야 한다면, 성만찬에 여성이 참여해서도 안 되고 인도에 복음을 전하러 가서도 안 될 것이다. 비록 성경에 유아세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하더라도, 바울이 빌립보 간수의 '온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것이나 어린이를 품에 안고 축복하신 그리스도를 볼 때 충분히 유아세례의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츠빙글리는 유아세례가 중세시대의 고안물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전통이었다며 유아세례를 옹호했다.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에서는 두 사람이 전혀 다르지 않았지만,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둘째, 세례 이전에 믿음이 선행돼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후프마이어를 비롯한 아나뱁티스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세례란 믿는 자들이 자신의 믿음을 입으로 고백한 후에 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신의 믿음으로 고백할 수 없는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나뱁티스트에게 있어서 유아세례의 반대말은 성인세례가 아니라 '믿는 자의 세례'이다. 후프마이어는 성경의 여러 곳을 언급하며 믿는 자의 세례만이 진정한 세례임을 주장한다. 반면 츠빙글리는 세례 전에 반드시 믿음이 선행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아니라고 답하였다. 세례에는 물세례, 성령세례, 내적인 믿음, 외적인 가르침 모두가 포함되며, 그 순서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후프마이어는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선한 삶을 살아가는 순서를 중시하면서 세례 전에 믿음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츠빙글리는 그것이 일반적인 순서라 하더라도 세례를 받은 후에 내적 믿음을 가지거나 외적인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츠빙글리가 그렇게 주장한 것은 세례가 그리스도인의 믿음 생활의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례를 그리스도인으로의 입문(Christian Initiation)으로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두 가지 외에도 할례가 유아세례의 유비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마태복음 28장의 대위임령이 유아세례를 지지하는지 반대하는지, 유아세례에서 하나님 은혜의 역사가 우선인지 인간 믿음의 결단이 중요한지 등 여러 논점에서 츠빙글리는 전자의 입장을 후프마이어는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며 논쟁을 이어갔다.



#목회적 주제로서의 유아세례

유아세례를 둘러싼 논쟁이 단지 16세기의 갈등인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아세례는 교단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다수의 그리스도교 교단은 유아세례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인정하여 실행하고 있지만, 아나뱁티스트의 전통을 이어받은 메노나이트 교단과 아나뱁티스트의 후예라 자처하는 침례교단은 지금도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믿는 자의 세례'를 고수하고 있다. 분명 유아세례가 남발될 경우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지 못하면서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명목적 신자들이 양산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교회의 성례인 세례에서 유아를 제외하거나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를 제한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뿐 아니라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의 풍성한 유산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세례는 교회의 성례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언약 예식이다. 그러므로 유아세례 혹은 성인세례 예식 때에 당사자에게만 아니라 부모와 회중에게도 세례자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양육할 것인지를 묻고 확인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례는 하나님, 교회 공동체, 부모, 당사자 모두가 참여하는 언약식인 셈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사적 세례나 비밀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공적으로만 세례를 베풀었다. 유아세례가 성경에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교회예식이라면, 유아세례를 베풀기 전에 먼저 그 세례가 세례 받는 당사자의 신앙에 유익이 되는지, 교회 공동체에 덕을 끼치는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지 묻고 그렇다고 판단될 때 뜻깊은 언약의 시간이 되도록 잘 준비하여 실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박경수 교수 /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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