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의지가 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작성 : 2020년 08월 28일(금) 10:27 가+가-
<17>의지의 자유 논쟁

의간의 자유의지와 구원에 대해 반대 입장을 펼쳤던 루터와 에라스무스.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구원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둘러싸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 논쟁의 역사 가운데 가장 뚜렷하고 중요한 한 장면이 있다면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문서 논쟁이다. 당대 '최고의 인문주의자', '유럽의 지성'이라 불리던 에라스무스(1466/69~1536)는 교회 권력의 남용에 대한 루터의 비판과 개혁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루터의 태도와 논리는 지나치게 거칠고 폭력적이어서 교회와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위협할 수 있었다. 특히 구원과 관련해 인간의 본성과 자유의지의 역할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루터의 견해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에라스무스는 1524년 '자유의지론'을 집필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구원의 과정에서 갖는 역할을 옹호하였다. 더불어 성경해석에 있어서는 오랜 세월에 걸친 교회의 합의가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맞서 1525년 루터는 '노예의지론'을 통해 에라스무스와 설전을 펼쳤고, 이로써 인문주의자와 종교개혁자의 차이는 분명해졌다.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

에라스무스는 이 책에서 자유로운 선택이란 '사람이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것들에 전념하거나, 이런 것에서 돌아설 수 있는 인간 의지의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구원에서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의 의지에 선행하며 우선적이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그 은총과 협력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은총이 주도적 원인이고 우리의 자유의지는 이차적인 원인이 되는 방식으로 은총과 의지는 함께 행동한다." 에라스무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그는 은총을 얕잡아본 것이라기보다는 인간 의지와 책임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세우고자 한 것이다.

그는 또한 성경의 많은 구절과 교회의 오랜 전통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에라스무스의 주장에 의하면, 만일 인간에게 의지의 자유가 없다면 모든 것이 운명론으로 귀결될 것이고, 성경이 말하는 모든 약속, 충고, 축복, 저주도 헛될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보상을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결국 모든 도덕이 폐기되고 세상은 혼란과 무질서로 떨어지고 말 것이 분명해 보였다. 도덕주의자인 에라스무스의 눈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깡그리 부정하는 루터의 과격성과 배타성이 로마교회의 부패와 타락만큼이나 세상의 질서와 평화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였다. "포도주가 사람을 술 취하게 하고 실수를 저지르게 만든다고 해서 포도나무를 잘라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듯이, 인간의 의지가 죄를 짓는 기회를 찾는다고 해서 자유의지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과격성을 비판했다.



#루터의 '노예의지론'

에라스무스의 책을 읽은 루터는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위태로움에 처했음을 자각하고 에라스무스 책 분량의 거의 4배에 달하는 긴 답변서를 내놓았다. 루터는 에라스무스에게 오히려 감사를 표하는데, 그것은 그가 제기한 이 문제, 즉 '우리 의지가 영원한 구원과 관련해서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가, 혹은 은총의 역사 아래서 단순히 수동적인가'하는 것은 종교개혁운동에서 너무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가 전자를 이야기했다면, 루터는 후자를 주장했다. 루터는 이 문제가 너무나 중차대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세상에 소동이 생기고 혼란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결코 침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루터가 긴급하게 에라스무스의 주장에 대해 장황한 논박을 펼친 이유다.

루터가 말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인간은 자기 능력과 소유와 관련해 자신의 자유 선택에 따라 그것을 사용하거나 방치해 둘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 다른 한편 하나님과 관련해 혹은 구원이나 저주와 관련해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니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하나님의 의지나 사탄의 의지에 종속된 포로요 백성이요 노예다." 루터의 요점은 인간이 일상생활의 여러 문제와 관련해서는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고 또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적어도 구원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하나님의 은총과 뜻에 철저히 속박되어 있기에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루터가 볼 때에는 인간의 의지와 선택이 구원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기에, 이런 점에서 구원에 관한 한 인간의 의지는 노예의지라고 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양가감정

루터는 한때 에라스무스를 자신의 영웅이라며 치켜세웠다. 에라스무스는 루터가 개혁의 횃불을 들기 훨씬 이전인 1503년 '엔키리디온(그리스도인 병사의 지침서)'에서 외적이고 형식적인 것보다 내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중시해야 함을 역설하면서 로마가톨릭교회를 맹렬하게 비판했다. 비록 에라스무스가 끝까지 로마가톨릭교회를 떠나지 않고 그 안에 머물렀지만, 그도 당시 로마교회가 지니고 있던 모순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공격했다.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의 알을 낳았고 루터는 이를 품어 부화시켰다'는 일반적인 평가는 개혁이라는 대의에 있어서만큼은 두 사람이 동일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가 두 사람을 결정적으로 갈라놓았다. 인문주의자로서의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자율성과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인간의 죄성을 깨달은 종교개혁자 루터는 인간에게서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희망을 두었다. 어쩌면 두 사람의 결별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과격함이 거슬렸고,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회의주의가 못마땅했다. 에라스무스에게는 세상의 평화와 질서가 중요했고, 루터에게는 하나님의 진리와 확신이 우선이었다.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루터의 주장이 에라스무스에게는 운명론이나 도덕폐기론으로 비쳤고, 자유의지를 긍정하는 에라스무스의 주장이 루터에게는 신인협동을 주장하는 펠라기우스주의의 부활로 여겨졌다. 위대한 두 개혁자가 동지로 함께하지 못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아쉽지만 어쩌면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프라이부르크의 법학자 울리히 자시우스(Ulrich Zasius)의 말처럼, "에라스무스에게 루터의 대담함과 날카로움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루터에게 에라스무스의 풍부한 학식과 말솜씨와 겸손과 분별력이 있었더라면, 이보다 더 훌륭한 피조물이 어디 있었겠는가?"

박경수 교수 /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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