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라는 존재의 십자가
[ 기독교문학읽기 ]
작성 : 2019년 05월 08일(수) 18:44 가+가-
6. 이정은, '피에타'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난 '천국'은 있다고 믿는다. 감히 바랄 수가 없을 뿐이지.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어서 그렇지." 이정은(1939~ )의 소설 '피에타'의 마지막 단락이다. 작가는 존재의 의미 추구를 위한 노력을 쉬지 않으면서 어머니라는 대상에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 대상은 이미 천국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어머니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도 없고, 또 어머니가 존재의 흐름이 되어 온몸을 통과하는 경험이 없다면 도저히 표현할 길 없는 글이라 할까. 가정의 달 오월에 가족이 함께 나눌 만한 감동적인 어머니 이야기가 이렇게 펼쳐진다.

이 소설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딸이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고 추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딸이 "내 존재는 어머니가 쏟아낸 기도, 염려의 열매이다"라고 말할 만큼 어머니는 신앙으로 고통을 견디며 어린 자녀들을 길러냈다. 어머니가 죽음의 유혹을 느낀 것은 태어난 지 겨우 여섯 달 된 어린 생명을 실수로 잃어버린 후였다. 가족들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었지만, 어머니는 자신이 직접 십자가를 만들어 마치 거기에 스스로 매달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갈 데가 교회밖에 없었고 그곳에서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까지 세상을 떠나고 나자 어머니의 삶은 온전히 바뀌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자책하며, 생명이 있는 한 남에게 베푸는 삶만이 속죄의 길이라고 믿게 된다. 작은 시골집에 어려운 사람이나 연고가 없는 사람들을 데려와 정성껏 보살피기 시작한다. 딸은 그것이 불만이다. 어려운 살림에도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드리면 곧 남을 위해 써버리기 때문에 착취당한다는 기분이 든다. 옷을 사드려도 누구에게 주어 버리는지 항상 자주색 월남치마만 입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그래서 어머니를 뵈러 갈 때는 위로와 사랑의 말을 드리겠다고 벼르고 가지만, 막상 가서는 싸움만 하고 돌아오게 된다. 어머니 생각만 하면 마치 시시포스와 줄다리기를 하듯 힘들게 밀어 올린 바위가 아래도 곤두박질치는 느낌이 든다. 모녀간의 사랑과 갈등을 이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은 다시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딸은 어머니라는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워지고 차라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그런 자신에게 흠칫 놀라 참회하는 시간을 갖던 어느 때, 어머니는 치매를 앓게 되고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고 만다. 딸은 울면서 하나님을 원망한다. 설혹 어머니를 죽게 해 달라고 했기로서니 그 말을 진정으로 믿고 들어 주셨느냐고 항의한다. 그러다가 엄마에게 나를 더 오래 괴롭혀도 참을 수 있는데 이렇게 빨리 가실 줄 몰랐다며 용서를 빈다. 어머니의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자식과 부모 사이는 용서라는 말이 필요 없단다. 다 한 몸이니까."

이 소설은 어머니가 선물로 주신 피에타를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고통을 품은 초월적 존재를 떠올리는 딸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Pieta, 슬픔)'는 십자가에서 죽은 아들을 끌어안은 성모 마리아의 비탄을 담은 것이다.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모든 말과 일을 마음에 두고 오직 아들을 생각했다(눅 2:19, 51). 그리고 그 마음의 새김은 십자가에서의 대화로 나타났다(요 19:26~27). 어머니란 자녀를 위해 영원한 슬픔을 아로새기고 십자가를 지는 존재이다. 신앙심 깊은 이정은 작가는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그리스도가 겪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바탕으로 삼아, 하나님의 섭리에 복종하며 슬픔을 이기려는 어머니들의 소망을 문학적으로 조각하고 있다.



김수중 교수/조선대 명예교수, 동안교회 협동목사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