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역사를 아로새기다
[ 기독교문학읽기 ]
작성 : 2019년 01월 02일(수) 16:59 가+가-
(1)윤흥길 <문신>

윤흥길 작가 /사진제공 문학동네


김수중 목사(조선대 명예교수)
2019년은 3.1운동 백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민족의 자주성과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평화적으로 드러낸 이 운동은 인류 역사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숭고한 쾌거였다. 그런데 이 역사적 시점에서 문학의 결실을 돌아볼 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민족운동을 소재로 한 본격적인 작품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운동의 중심에 하나님의 뜻과 인간 정신 구현을 새긴 기독교 문학 작품이 많지 않다.

그 까닭은 여러 방면에서 발견된다. 아마 문학인들도 이 위대한 민족운동을 앞에 놓고 다음과 같은 고민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 그것은 3.1운동의 영광이 교회를 포함한 그 어떤 세력에게도 통째로 안겨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운동은 일단 실패로 돌아갔고, 더욱 가혹해진 일제의 탄압 정책 앞에 우리 민족은 방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독교 역시 치열한 자기반성의 시기를 겪는다. 비록 민족대표의 숫자가 많았고, 피해가 집중된 곳이 교회이긴 했지만 실제로 기독교가 이 운동의 중심에 섰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로 우리 민족과 한국 기독교의 진로가 여러모로 갈리고 심지어 극단적인 대립으로까지 치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려 깊은 문인들로서는 이 고단한 역사의 흐름 앞에 창작의 의욕을 불태우기보다는 일단 냉정하고 분석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다행히 이 과정을 극복한 능력 있는 작가들에 의해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그린 대하소설들이 탄생했다. 그 중에 우리 민족이 어둠 속을 걸어갈 때 보여주었던 '세 가지 방향을 참 아프게 형상화한' 작품이 눈길을 모은다. 그것은 최근에 출간된 윤흥길(1942~ ) 작가의 소설 '문신'이다. 여기서 말한 '세 가지'와 '아픔'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에 산서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야마니시 아끼라'로 창씨 개명한 '최명배'라는 비열한 대지주의 가정사로 시작된다. 그의 자녀 셋은 각각 식민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큰아들 '최부용'은 폐결핵을 앓으며 사회를 경멸하는 냉소적 인간이다. 딸 '최순금'은 기독교 신앙에 굳게 서서 마음을 다스리고 집안을 돌보는 인물이다. 작은아들 '최귀용'은 사회주의 이상국가의 건설을 꿈꾸는 이념적 인간으로 살아간다.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극복해 내려 세 가지 길에서 각각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노력이 교차하며 갈등이 증폭된다. 이 냉소와 이념의 사이를 어루만지는 신앙의 길은 약한 것 같지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이 작품을 꿰뚫고 흐르는 아픔, 이것을 작가는 '문신'이라는 제목으로 함축해 놓았다. 작가는 '부병자자(赴兵刺字)', 곧 전장에 나가는 남자가 죽을 경우 시신으로나마 고향에 묻히고자 신분 확인을 위해 스스로 몸에 새긴다는 문신을 표제로 삼고 있다. 이 소설의 평설을 쓴 김훈 작가는 그 아픔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여기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경건성의 바탕이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듯이, 작가는 소설을 짊어지고 고통스러운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팔순을 바라보는 윤흥길 작가는 등단 50년의 시간 가운데 20년에 걸친 날들을 이 작품 집필에 몰두했다고 밝혔다. 마치 스스로의 인생과 신앙을 자신의 가슴에 문신하듯 말이다. 대하소설 '문신'은 아직 완간이 되지 못한 채, 5권 중 3권만 최근 발표된 상태다. 작가는 등단작 '회색 면류관의 계절'에서부터 신앙적 고백을 시작한 이래 '장마', '완장',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소라단 가는 길' 등 사회성 짙은 작품들을 쓰며 세상의 흐름을 지켜보아 왔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필생의 역작을 마무리해 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진행형인 고통의 역사가 3.1운동 백주년에 민족의 문학으로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이 작품이 3.1운동을 다룬 것은 아니지만 그 후에 겪는 민족의 아픔과 신앙적 위로로 인해 의미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김수중 / 조선대 명예교수, 동안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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