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용서의 믿음행전- 유승준의 '태양을 삼킨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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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2019년 07월 10일(수) 10:00 가+가-
전라남도 신안군 최북단에 있는 임자도, 작가는 이곳을 가리켜 '태양을 삼킨 섬'이라 하였다. 이 섬이 이토록 뜨거운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원수까지도 용서한 사람들이 내뿜는 믿음의 온도 때문이다. 이 글은 소설이 아니라 사실의 기록이며 일종의 다큐멘터리 행전으로 볼 수 있다. 저널리즘 작가인 유승준(1964~ )이 '천국의 섬, 증도'에 이어 내놓은 또 하나의 결실이다. 증도와 임자도는 지척에 있는 섬이다. 증도에서 활동한 문준경 전도사가 임자도에 건너와 교회를 세웠고, 이 교회의 중심인물이 된 이판일 장로 가족의 순교와 용서가 바다까지 들끓게 하였다. 유승준 작가는 증도보다 더 강렬했던 임자도의 순교사를 직접 듣고, 느끼고, 어루만지며, 생생한 필치로 형상화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임자도는 태양이 아름다운 평화의 섬이었다. 하늘 아래 펼쳐지는 탁월한 풍광과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해넘이 모습, 그리고 붉은 흙 속에 들깨와 대파를 심어 거두고 천일염으로 새우젓을 담아내는 순박한 주민들의 삶이 정겹게 어울려 햇살마저 더욱 곱게 느껴지는 땅이었다. 그런 섬에 좌우익 간에 극심한 이념 대결이 펼쳐져 약 이천 명의 희생자가 나오고, 특히 임자진리교회 교인 마흔여덟 명의 죽음으로 인해 평화롭던 땅이 피로 물들고 말았다. 그해 10월 5일 새벽 1시경, 이판일 장로의 가족 열두 명은 모래사장으로 끌려나가 최후의 기도를 끝내지도 못한 채 집단 학살을 당했다.

이 충격적 사실 앞에서도 작가는 역사와의 대화를 시도하며 순교의 의미를 명확히 세우고 있다. 순교의 조건은 신앙을 고백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으로서, 그를 대적하는 박해자나 정치적 가해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판일 장로와 장성한 그의 가족 10인이 진정한 의미의 순교자이며, 어린아이였던 두 조카와 나중에 살해된 딸은 신앙고백과 자신의 의지에 따른 순교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아울러 구체적인 죽음의 기록이 남지 않은 35인은 순교자라기보다 희생자로 보아야 하는 것이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임자도의 뜨거운 반전은 순교자 이판일 장로의 아들 이인재에게서 일어났다. 그는 전쟁 중에 목포에 거주하면서 고향 가는 길이 막혀 노심초사하다가 국군을 따라 임자도에 와서 순교의 현장을 목격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숙부와 숙모, 그리고 인자하신 할머니와 사랑스런 동생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그의 분노는 형언키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원수를 갚고 나서 부모형제의 뒤를 따르려 했으나 마음속에 임한 순교자 아버지의 음성을 듣게 된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그들을 용서했으니 너도 그들을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으로 갚아라."

청년 이인재는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자신이 물려받은 논 1천 평을 팔아 직접 예배당을 지었다. 그리고 순교한 가족들의 신앙을 계승하기 위해 목회자의 길을 걸어갔다. 이인재 목사의 마지막 목회지는 아버지가 순교한 임자진리교회였다. 그의 사랑으로 인해 온 마을은 신앙 공동체로 변모해갔다. 박해의 시대에 복음을 지키기 위해 바친 생명이 사랑으로 새롭게 피어나 이 섬을 삼키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의 마무리 부분에서 무명 순교자들에 관해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묵묵히 주님을 섬기다가 이름도 빛도 없이 하늘나라로 떠난 순교자들의 눈물과 피를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소수 엘리트 순교자들에 대한 연구와 기념에만 몰두한 나머지 이들 무명 순교자들에 대한 그것이 소홀히 된다면 우리는 역사 앞에 두 번 죄를 짓게 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판일 장로와 그 가족 그리고 임자진리교회 성도들의 순교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김수중 명예교수(조선대, 동안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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