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영성, 그리고 채움의 영성
[ 생감교육이야기 ]
작성 : 2020년 01월 07일(화) 08:00 가+가-
영화로 보는 생생하고 감동있는 교육 이야기 <2> '바베뜨의 만찬' 통한 영성교육의 재발견

1987년 덴마크에서 제작된 영화 '바베뜨의 만찬' 중에서.

바베뜨의 만찬은 1987년 덴마크에서 제작된 영화로 한국에서는 1996년에 상영된 바 있다. 덴마크의 한 신앙공동체가 설립자 생존 시에는 신앙적 정체성이 분명했으나, 설립자가 작고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 분열, 대립의 골이 점점 깊어져 간다. 이때 그들에게 프랑스대혁명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은 한 여인, 바베뜨가 피신해온다. 그녀는 파리 레스토랑의 수석요리사였다. 바베뜨는 자신이 수석요리사였음을 밝히지 않은 채 성실하게 공동체를 섬긴다. 공동체는 금욕과 절제만이 최고의 신앙이라고 여겼기에 최소한의 검소한 음식만 먹는다. 하지만 그들 속에는 사랑, 용서, 화해의 모습이 전혀 없었다. 바베뜨는 전쟁도 끝나고 친구에게 맡겼던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바베뜨는 공동체 창시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만찬을 준비하겠다고 간청한다.

바베뜨는 최고의 재료들을 프랑스에서 들여오고 온갖 정성을 기울여 공동체를 위한 성찬(盛饌)을 대접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 맛과 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저절로 웃음꽃이 피어나고 묵은 감정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진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손을 붙잡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를 축복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공동체 지도자인 마티나와 필리파는 바베뜨에게 '최고의 만찬'이었다고 감탄하며 언제 파리로 갈 것인가 묻는다. 바베뜨는 "저는 파리로 돌아가지 않아요. 돈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에 마티나와 필리파는 한 번의 만찬을 위해 만 프랑을 다 썼다는 사실에 놀라며, 그녀의 앞날을 걱정한다. 그러자 바베뜨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자신이 최선을 다하면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이것은 파팽이 바베뜨에게 가르쳐준 말이다. 파팽은 성악가이자 젊은 시절 필리파의 연인이었다. 필리파는 다시 한번 놀라며 말한다. "천국에서 바베뜨는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위대한 예술가가 될 거야!" 이 말과 함께 방안을 밝히던 촛불이 꺼지고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는 노벨문학상 후보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의 단편소설을 영화한 것으로서 곳곳에 기독교 메시지가 숨어 있다. 덴마크 청교도 공동체 열두 명을 위한 만찬은 그리스도의 유월절 만찬을 기억나게 한다. 열두 명 모두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잔에 참여한다. 바베뜨는 물론이고 시중들던 소년까지 모두가 그 잔에 참여함으로써 공동체가 회복된다.

영성은 금욕과 금식 같은 절제를 통한 회복도 있지만 잔과 떡의 풍요한 식탁에의 참여를 통한 회복도 있다. 전자가 무념적(apophatic) '비움'의 영성이라면 후자는 유념적(kataphatic) '채움'의 영성인 것이다. 생명을 불어넣는 숨에는 들숨만 있지 않고 날숨이 있다. 또한 수축만 있지 않고 팽창도 있다.

청교도 공동체는 처음의 순수성과 순전성을 잃어버린 채 자기 의(義), 형식적 경건, 외식적 금욕에 빠져 서로를 향한 비난, 원망, 정죄로 인해 붕괴 직전에 놓인다. 이런 상황에서 메시야적 섬김(messianic service)을 바베뜨가 감당한다. 그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마지막 행운(만 프랑)마저도 공동체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준다. 바베뜨가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음을 염려하는 필리파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그녀는 자신을 단순한 가정부나 요리사로 보지 않았다. 그녀는 음식과 요리를 통해 화합과 화해를 창조하는 '푸드 아티스트'(Food Artist)였던 것이다. 바베뜨는 '푸드 아트'를 통해 물리적 성찬(盛饌)을 영적 '성찬'(聖餐)으로 승화시켜 놓았다.

바베뜨가 예술가라면 기독교인 역시 예술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응시하며 삶을 예술로 승화시켜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신앙교사, 영성교사 역시 신앙예술가, 영성예술가이다. 신앙생활, 영성생활을 예술처럼 멋있고 향기롭게, 신비롭고 우아하게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바베뜨는 신앙인이 어떠해야 함을 그리고 영성교사가 어떠해야 함을 삶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앙인은 가난하지 않아요. 신앙인이 최선을 다하면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중요한 순간을 액자에 담듯 바베뜨의 명언을 마음에 담아본다.

이규민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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