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에리의 오만이 주는 교훈
[ 생감교육이야기 ]
작성 : 2020년 02월 04일(화) 08:00 가+가-
영화로 보는 생생하고 감동있는 교육 이야기 <5> '아마데우스' 통한 영성교육의 재발견

영화 아마데우스 중에서.

# 신앙과 헌신 이면에 자리한 자기 욕망

1823년 겨울밤 한 노인이 자살 시도를 한 후, 젊은 신부와 마주 앉아 지난날을 회고한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의 궁정악장이자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살리에리(Antonio Salieri)이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의 눈을 통해 모차르트의 삶을 조명한다. 이 영화는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등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연출하고 고증에 기초하여 오페라 공연과정과 시대상을 보여줌으로써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의 내면을 밀도있게 묘사함으로써 공감대와 설득력을 이끌어내는 불후의 명작이다.

어려서부터 '음악 신동'으로 불렸던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작곡, 지휘, 연주에서 천재적 재능을 발휘한다. 반면 살리에리는 음악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 그리고 신실한 신앙으로 빈의 궁정악장이라는 영예로운 자리에 오른다. 신 앞에서 경건하고 교회 음악의 전통을 중시하며 각고의 노력을 통해 입지를 굳힌 살리에리 앞에 모차르트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살리에리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모차르트는 그 즉석에서 멋지게 바꾸어 버린다. 그리곤 조롱하는 듯한 특유의 웃음을 웃는다. 살리에리가 보기에 모차르트는 수준 이하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탁월한 재능을 내려준 대상은 경건한 신앙을 가진 자신이 아니라 방탕하고 안하무인인 모차르트였던 것이다. 게다가 연인이었던 카테리나마저 모차르트에게 빼앗기게 되면서 살리에리는 앙심을 품는다.

어느 날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임시로 구상한 악보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초고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수정이 필요 없는 훌륭한 악보였기 때문이다. 한 소절만 바꿔도 전체 구성이 무너져 버리는 완벽한 악보를 보며 살리에리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모차르트의 재능에 감탄과 경이를 느끼면서 자기에게는 욕망만 주고 재능을 주지 않는 신을 원망한다. 분노와 절망에 빠진 살리에리는 십자가를 가차 없이 불 속에 던져버리고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사람들은 흔히 '영원한 2인자의 비애', '천재 앞에 선 범재'라는 주제로 이 영화를 바라본다. 하지만 면밀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작곡가로서의 능력은 모차르트가 탁월하지만 음악에는 작곡만 있지 않다. 작곡 외에도 지휘, 연주, 교육, 행정 등 다양한 영역이 있다. 모차르트는 남다른 감수성과 시대를 넘어선 화려한 작곡 능력을 갖추었지만, 음악교육과 행정에서는 살리에리가 훨씬 탁월했다. 실제 살리에리는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체르니 등 당대 위대한 작곡가들의 스승이자 음악교육의 대가였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음악가들을 돕고 음악 가족들을 위한 상조회를 마련하고 정기적으로 자선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당시 살리에리의 오페라는 성황을 이뤘고, 빈의 많은 사람들이 모차르트보다는 살리에리의 음악을 더 친숙하게 느꼈다고 한다.

#살리에리의 마지막 외침 "나는 모든 평범한 사람의 대변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색된 이 영화에서는 노력형 수재인 살리에리가 타고난 천재 모차르트에게 불같은 질투와 시기를 느끼고 열패감의 늪에 빠지는 존재로 등장한다. 신에게 거부당했다고 여긴 그는 결국 신을 부정하고 만다. 이런 살리에리에게 '맏아들 콤플렉스'가 엿보인다. 성품, 성실, 노력 등 모든 면에서 맏아들 같은 자기를 버려둔 채, 쥐엄 열매를 먹는 방탕한 모차르트에게 가락지와 신을 신기고 잔치를 베푸는 하나님을 향해 대노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살리에리의 기도 속에 '영웅 콤플렉스'도 드러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되게 해 주소서. 음악을 통해 당신을 찬양하며 나 또한 영원히 추앙받는 작곡가가 되게 하소서." 그의 신앙과 헌신 이면에는 강한 자기 욕망이 들어있다.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마저 좌우하려는 오만이 그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교부시대 탕자 어거스틴은 극적 회심 후에 '오만'(hubris)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심각한 죄임을 깨달았다. 살리에리의 근본적 문제는 평범, 시기, 질투가 아닌 '오만'이었다.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하는 신이라면 불 속에 던져버리고, 열패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은 제거해서라도 최고가 되고자 하는 것, 그것이 곧 자기애에 기반한 '오만'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남은 것은 죄책감과 회한뿐이었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외침은 우리 모두를 향한 것이다. "나는 모든 평범한 사람의 대변인이오, 너희 평범한 사람들의 죄를 사하노라."

살리에리의 유혹과 죄성이 우리에게도 들어있다. 영적 여정에서 삶이란 끝없는 자기 한계의 확인 과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리스도가 있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우리와 같이 되신 그분이 있기에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모차르트의 천재성, 살리에리의 오만을 넘어선 '그리스도의 마음'(Mind of Christ)이야 말로 우리 모두를 살리는 참된 길, '생명의 길'임을 전하는 사람이 곧 영성교사이다.

이규민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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