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우리의 기쁨과 소망
[ 가정예배 ]
작성 : 2024년 07월 08일(월) 00:10 가+가-
2024년 7월 8일 드리는 가정예배

정문교 목사

▶본문 : 누가복음 7장 11~17절

▶찬송 : 96장



오늘 본문에 절망에 빠진 한 여인이 나온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 과부로 가난하게 살던 여인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이 여인의 인생에 있어서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그 희망이 일찍 스러져 버렸다. 그래서 남은 건 절망뿐이다. 죽은 청년의 시신을 둘러매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성 밖으로 나가는 절망스러운 장례 행렬을 향하여, 또 다른 한 무리의 행렬이 다가오고 있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르며 동행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기쁨으로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이, 백부장이 사랑하던 종이 병들어 죽게 된 것을 고쳐주심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인성 입구에서 절망의 무리와 기쁨의 무리가 만났다. 어떻게 되었을까? 절망과 기쁨이 만나면 누가 이길까? 정답은 '더 강한 쪽'이 이긴다. 대개는 기쁨보다는 절망이 힘이 더 세다. 괜히 '인생 고해'라는 말이 생긴 게 아니다. 그런데, 죽은 아들을 메고 나오던 절망스러운 장례 행렬이 기쁨의 행렬로 바뀌었다. 정말 기쁨이 절망보다 더 강하고 셌던 것일까? 아니다. 예수님께서 거기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절망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생명이기에, 예수님 앞에서는 죽음이 물러간다. 예수님은 빛이시기에, 예수님 앞에서는 어둠이 물러간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슬픔을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이 기쁨이 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가난도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 부요함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쁨 되시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절망은 힘을 잃고 물러간다.

예수님께서, 남편도 없고 아들도 잃고 희망도 없는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울지 말라!" 그렇게 큰 슬픔, 세상 없는 절망에 빠진 여인을 향하여 "울지 말라"라고 말씀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시다. 아니, 그녀의 절망과 슬픔을 위로하시고, 눈물을 닦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다. 그녀의 고통과 슬픔을 아시고, 그 고통과 슬픔을 찬송과 감사로 바꾸어 줄 수 있기에, 예수님은 여인을 향하여 "울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왜 사람들을 전도하는가? 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가? 예수님이 저들을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저들을 살릴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죽은 청년이 누인 관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오늘 본문에서 가장 가슴 뛰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죽은 자에게 명령하셨다. 예수님의 권세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주관하신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고, 죽을 자를 영원히 살게 하는 권세를 지닌 예수님이 명령하시자, 죽은 청년이 다시 살아났다. 죽음이 예수님께 순종하여, 사로잡고 있던 '죽은 자'를 내어 놓았다.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이기신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믿는 모든 자들을 부활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명하셔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고통과 슬픔과 절망이 물러가며,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과 소망이 우리 속에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과 함께라면 절망도 슬픔도 고통도 견디고 인내하며 이겨낼 수 있음을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진실하게 신뢰하는 부활의 신앙으로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문교 목사/강릉포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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