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의 기억 조각
[ 미션이상무! ]
작성 : 2023년 09월 06일(수) 10:11 가+가-

불타는 금요일 생활반을 방문한 이구 목사와 장병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여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군해병대 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바다에서 일어난 국민의 생명을 잃게 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월호 사건 약 3개월 후, 2014년 7월 22일에 해군제3함대의 군종목사로 부임을 받았다. 부임했을 때 부두에는 군함이 거의 없었다. 해경의 세월호 수색작전을 지원하며 해군 함정들이 출동하여 오랜 시간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해군은 부식 적재를 부두로 돌아와서 하지만, 세월호 때에는 부식을 바다에서 받기도 하고 30일, 40일을 바다 위에 떠서 수색작전을 지원하고 있었다. 바다 위에서 생활하고 있는 해군장병들의 근무피로도가 아주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군종활동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고속정을 타고 이동하여 간식을 제공하고 역량강화교육 및 상담을 실시하였고 오랜 시간 예배를 드리지 못한 이들과 함께 함정에서 예배를 드리며 함정과 장병들을 위해 축복 기도하는 시간을 끊임없이 가졌었다.

참, 감사한 것은 오랜 시간 육지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해군장병들이 세월호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향한 애통한 마음을 가지고 어려운 근무 여건에서도 오랜 시간 견뎌내고 버티어 냈다는 점이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행여나 바다 위에 생명의 흔적이라도 있지는 않은지 눈에 불을 켜고 살피는 그들의 모습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였다. 정신력과 영력이 육체를 지배하는 순간을 나는 세월호 수색작전을 지원하는 해군장병들 속에서 볼 수 있었다.

해군목포교회에서 예배를 집례할 때마다 빠짐없이 나오는 장병들의 기도 제목은 "세월호에서 기적의 생존자가 나타나게 도와주십시오", "세월호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옵소서"였다. 내가 목포에서 만났던 해군장병들은 자신의 힘든 군생활을 위한 기도보다 세월호 사건을 위해 더욱 기도했던 아들, 딸들이었다.

어쩌면, 누구보다 바다를 잘 아는 해군장병들은 오랜 시간 수색을 지원하면서도 생존자나 시신을 찾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수색을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하나님의 기적 같은 손길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목포에서 근무하면서부터 나는 선배 목사님을 통해 배운 불금생방(불타는 금요일 생활반 방문)을 실시했다. 오랜 시간 세월호 수색 작전을 지원하면서 가지게 된 근무피로도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금요일 저녁 19시에 생활반에 가서 장병들과 교제하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해주며 인생의 본래적 가치를 생각해 보며 매주 불금생방을 실시하였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장병들이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였다. 새로 나온 장병들이 교회에 꾸준히 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군종목사로서 참 뿌듯한 순간이었다.

해군제3함대가 지키는 남해와 남서쪽 바다는 침몰의 상처가 많은 곳이다. 1950년대 이후로 끊임없이 해상사고가 발생했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남서쪽 바다는 항해하기 쉽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험난한 바다 위에서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기 위해 지금도 헌신하고 있는 해군해병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구 목사 / 해군중앙교회·해군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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