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수석장로 중심돼 교회 방향 정해 나가야
[ 6월 특집 ]
작성 : 2023년 06월 02일(금) 08:11 가+가-
이 시대의 목사직을 말하다 1. 담임목사의 불안한 지위와 제도적 개선 방안
목사의 주요 칭호로, 위임목사, 담임목사, 부목사 등이 있다. 이전에 담임목사를 임시목사로 말했었는데, 그렇게 바뀐 것은 97회 총회로서 벌써 10년이 다 된 것 같다. 임시목사라는 칭호가 무게감이 없어 담임목사로 변경했지만, 실상의 내용에 있어서는 바뀐 것은 없다. 임시목사나 담임목사나 모두 시무 기간은 동일하게 3년으로 시한부 계약직인 것이다.

담임목사는 일반 회사로 치면 일종의 수습사원이나 진배없다. 수습 기간을 지나면 언제나 잘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 오늘의 목회자 중 위임목사는 1/3에 못 미치고 있는 형편이다. 일반 직장은 보통 수습 기간이 3개월 정도이며 대부분 수습을 거치면 정직원이 되나, 요즈음 교회들은 그렇지 않다. 담임목사 3년을 지내고 정식 위임목사가 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아 정말 살얼음판 같은 기간이 되고 있다. 이에 담임목사제를 폐하고 모든 목회자를 위임목사로 청빙하여, 6~7년 단위로 공동의회가 시무평가를 하게 하자는 대안이 제안되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임시직과 같은 담임목사 제도로 인해 목회자의 지위는 점점 불안해지고 있다. 그 기간 동안 당회나 성도들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므로 소신껏 목회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그렇게 눈치를 보는 기간을 3년이나 만들어 놓으니, 당회장의 권위는 사라지고 모든 힘이 다 소진된 상태로 가게 된다. 한국교회들에 있어 재정권과 인사권이 당회, 더 정확히 말하면 장로들의 수중에 있는 교회들이 적지 않다. 목사는 설교와 심방만 잘하면 되고 다른 행정적인 일은 당회가 전부 갖게 되는 구조다. 어느 교회는 목회자를 청빙하며 설교와 심방하는 일만을 목회자의 일로 규정하여 선발하는 교회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와 같이 아무 힘이 없게 된 담임목사는 일종의 동네북이 되기 쉽다. 부목사들도 인사권이 있는 장로들의 눈치를 보지 담임목사의 눈치는 보지 않는다. 목사와 부목사의 관계에 있어 명령 하달되지 않으니 하극상이 일어나는 경우들도 종종 생기게 된다. 어떤 교회는 부목사가 원목의 설교를 파헤쳐 표절 시비를 하기도 하는 등 마음 아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의 목회자들은 나름의 권위를 유지하지만, 그 후에 들어오게 되는 후임은 그런 권위를 갖기 힘들다. 일단 젊은 나이에 당회장의 일을 맡게 되면 노련한 장로들의 능력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 이런 정황에서 한국교회는 점점 장로들의 힘이 세지게 되었으며 목회자는 점점 위축이 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오늘의 구조로 볼 때 자연스러운 변이로도 볼 수 있지만, 이런 분위기로 변해가는 것이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최근 교회들이 목회자를 청빙하며, CT 촬영, MRI 촬영, 긴 시간 동안의 사모님과의 동반 면접 등을 하며 목회자를 선발하는 것을 보게도 되는데,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목회자를 뽑는 길인지를 반성케 된다. 목회자의 청빙은 그 말대로 청빙이어야 함이 옳지 않나 싶다. 목회자를 회사 직원 뽑듯 경쟁시켜 뽑은 교회치고 훌륭한 목회자를 모시는 경우들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작금의 목회형국은 목회자들이 시어머니 몇 분을 모시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늘의 젊은 며느리들은 시댁도 잘 안 가는 형편인데, 목회자들은 젊은이로서 그런 분위기를 어떻게 견디는지 물어보고 싶다. 아마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자신의 삶의 행복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청년들은 목회자로서의 지망을 하지 않을 것이라 예측된다.

물론 젊은 목회자들 중 그 수중에 힘이 생길 때 좌충우돌하며 교회에 폐해를 입히는 경우들도 있어 목회자들에게 일종의 족쇄를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오늘의 이런 추세가 점점 강화된다면 결국 목회자들이 사역을 하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과 사모들이 육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제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보게 되는데, 이런 목회자들의 고통을 헤아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목회자의 편을 들고 싶거나 장로들의 편을 들고 싶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교회도 행복하고 장로, 목회자도 행복하며 온 성도가 다 행복한 목회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요즈음엔 수석장로가 교회마다 있으나 예전엔 그 수석장로를 '수장로님'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교회마다 권위 있는 수장로가 있어 후배 장로들은 수장로의 의견을 따랐으며, 목회자도 여러 장로들과 의논하기보다는 그 수장로와 의논하여 일사불란하게 일을 처리하였던 것 같다. 대부분의 수장로들은 목회자가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적극 지지하였고 필요할 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력으로 목회자가 하는 일을 돕기도 했다. 그런 수장로들이 있는 교회들은 편안한 교회가 되어 한국교회 발전에 초석이 되었던 것으로, 이런 구조를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 장로들이 교회의 모든 일을 서로 끌고 나가려 하는 것보다, 목회자와 수장로가 중심이 되어 교회의 방향을 정해나가는 것이 더 편한 체제로써, 이런 구심점이 잘 형성될 수 있도록 목회자와 장로들이 서로 자제할 때 한국교회는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이를 위해 기도한다.

노영상 전 총장 / 호남신학대학교, 현 한국외항선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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