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선교를 향한 헌신의 여정에 동행하신 '하나님'
[ 라떼는 말이야! ]
작성 : 2024년 07월 26일(금) 10:29 가+가-
④ 박창환 목사

논산 육군훈련소 군인교회에서 증경총회장 한영재 장로와 함께 진중세례식을 거행한 박창환 목사.

#검정색 베레모를 쓴 군종목사

검정색 베레모를 쓴 장병들을 보면 늘 가슴이 뭉클하다. 29년 동안 군종사역을 펼치면서 필자의 인생관에 큰 변화를 경험했다.

맹호여단에서 근무하던 시절, 합동세례식 준비를 위해 출장을 다녀온 뒤 특전사로 전출 명령을 받았다. 특전사 교육대에서 계급장도 없이 6주간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특전사 교육은 허공에서 진행되는 훈련이 많다. 그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과정은 낙하산 훈련이다. 장병들이 강하 훈련에 나서기 전 군종목사는 안전기도를 한다. 그리고 매 기수마다 장병들과 함께 낙하를 한다. 필자도 특전사에서 근무하면서 29번의 낙하를 경험했다. 그리고 낙하하는 장병들을 위해 기도했다.

특전사 군인교회의 목회는 낙하를 해야 설교의 권위도 생기고 장병들에게 인격교육을 할 때도 호소력이 있다고 한다. 군종목사들도 도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인내와 고통을 이겨낸 값진 베레모이기에 여전히 필자는 음식점이나 커피숍에서 베레모를 쓴 장병들을 만나면 모든 비용을 대신 지불한다. 군종목사 출신이지만, 전우를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다.



#육군훈련소 예배당 화재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나면 육군훈련소를 거쳐야 한다. 육군훈련소 연무대교회가 협소해서 주일 3회 집회가 진행된다. 30년 전만 해도 한국교회가 부흥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예배 시 성가대원이 일반석까지 앉아 성가를 부른 것은 감동적이다. 육군훈련소 주 3회 예배 후 세례까지 집례하면 월요일에는 허리가 편치 않을 정도로 지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일 오후 군 관계자들에게 연락이 왔다. "참모님, 교회에 불이 났습니다." 이게 웬일인가? 내 생애에 교회를 불태우다니! 급히 가서 보니 난로 연통을 밖으로 빼지 않고 천장으로 빼놓아서 과열되어 대들보가 탔다. 논산소방서와 훈련소 소방차가 출동해 진화했다.

군대에서 지휘관과 참모는 모든 업무를 감독하는 역할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참모 감독을 소홀히 했으니 규정에 따라 처벌받는 것은 당연했다. 앞으로 군 생활에 희망이 없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월요일, "훈련소장이 찾는다"며 전속부관에게 전화가 왔다. 훈련소장은 "목사님이 불을 내고 싶어서 낸 것도 아닌데 앞으로 감독 잘하시길 바란다"며 책임 소재를 묻지 않았다.

그 후 필자는 육군본부사령부 군종실장으로 명령을 받고 전출을 가게 됐다. 당시 육군훈련소 지휘관 김원태 장군에게 성경을 선물하고 근무지도 옮겼다. 이후 김 소장은 교인이 되었고, 훗날 필자는 김 장군의 장례를 집례했다.

육군훈련소 군인교회에서 발생했던 화재로 필자의 마음에 성령의 불이 붙었고, 군종목사 시절부터 인생관과 신앙관을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전적지 베트남에서 펼친 군선교

베트남은 한국과 지리적 환경이 비슷하다. 1954년 남쪽 월남과 북쪽 월맹으로 분단된 것처럼 우리나라도 1953년 7월 남북으로 갈라져 현재 휴전 중이다. 월남은 통수권자의 지휘 감독 부재로 1975년 4월 30일 공산화가 되어 지구촌에서 월남의 역사는 사라졌다. 월맹이 전승하여 사회주의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월남전쟁 당시 한국군 전사자는 4960명이다. 미군 전사자는 5만 8200명에 이른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국땅에서 산화한 전적지에 복음을 들고 갔다. '종교인은 국경이 있지만, 종교는 국경이 없다'는 변함 없는 마음 때문에 필자는 29년의 군생활을 마치고 베트남선교를 하게 된 것은 전적지에 복음을 전하는 것도 군선교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감당하는 선교기관의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후 베트남 교회의 필요와 내용을 전달받아 한국교회에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하노이신학교, 베트남신학교, 남딘아가페 병원, 다낭교회 등을 건축해 헌당했다. 베트남은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국정이 운영되는 우방국이 됐다.



#군선교에 적극 협력해야 할 이유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지 140년이 됐다. 1970년, 1980년대 학원, 군, 병원, 산업 선교 등을 통해 부흥 성장의 길을 걸으며 선교 대국으로 부각됐다. 시대 변천에 따라 현재는 기독교 재단에서 설립한 학교에서 성경도 못 가르치는 경우가 있고, 군에서는 무종교도 종교라는 명분 아래 교회에 출석하라고 말하지 못하게 됐다. 군선교의 황금어장 시대는 지나갔다고 한다. 현재 한국교회의 중·고등부, 청년부가 있는 교회의 감소 추세도 이를 증명한다.

이럴 때일수록 젊은 청년들이 올바른 국가관과 사생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신앙관을 확립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와 국가의 밝은 미래가 있다. 오늘날 교인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교인들을 확보할 수 있을까? 결국에는 군선교 현장이 답이다. 한국교회가 수만 명이 순환하는 군선교 현장을 외면하게 된다면 결국 교회의 미래도 암울할 수밖에 없다.

각 군 육·해·공군 사관학교, 3사관학교, 연무대훈련소에 입소하는 젊은이들에게 말씀으로 접근해 신자화하고 세례 후 양육해 사회에 파송해야 한다. 그들이 결혼해서 가족이 신자화된다면 한국교회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먼저 군선교와 국가를 위해 기도하고 필요한 어장인 논산 연무대훈련소와 각급 부대 신병교육대 세례식에 적극 지원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군선교 현장에 있음을 인지하길 바란다.



박창환 목사 /(예) 육군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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