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마음으로 보니 닭똥도 보물"
[ 작은것이희망이다 ]
작성 : 2024년 07월 08일(월) 07:22 가+가-
충남노회 정산푸른볕교회의 '닭똥' 사역

지난 2023년 가을, 정산푸른볕교회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운동회를 진행했다.

인구 감소, 교세 축소, 신뢰도 하락 등 전방위적 위기가 폭풍처럼 교회에 휘몰아치고 많은 이들이 이 모든 상황을 절망적이라고 안타까워하지만, 그늘진 곳에서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 목회자들의 섬김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특별히 작은 교회, 사역자들이 발산하는 감사의 고백은 언제나 도전이 된다.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게 하는 그 길을 함께 걷고자 본보는 작지만 희망이 되는 교회, '작은 것이 희망이다'를 특별 기획했다. <편집자 주>

양계장에서 닭모이를 주고 있는 고광진 목사.
【충남 청양=임성국 기자】 '농촌 교회'는 언제 찾아도 어머니의 따뜻한 품 같다. 애써 예뻐 보이거나 커 보이려 포장하지 않는다. 자식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어놓지만, 늘 미안해하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성도들을, 마을 주민을 보듬는다. 자식을 위해서는 끝없는 희생도 준비돼 있다. 그 사랑을 갚을 길 없는 불효자는 '충분하다, 괜찮다. 알아서 하겠다'며 핀잔을 놓지만, 우리네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보인다. 이게 하나님 사랑이란다.

그 마음 가지니 "여전히 부족하고 초라해서 또 미안하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작은 농촌 교회가 있다. 그 교회는 필요를 넉넉히 채워주지 못하고, 더 많은 농민과 함께하지 못해 오늘도 속앓이 중이다. 세속적인 잣대로 재단하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게 한국 교회가 가져야 할 복된 마음이자, 예수 사랑의 진정한 정신임을 일깨워준다.

이 같은 마음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추구하고, 자연 친화적인 소규모 형태의 생동감 넘치는 농촌 교회를 지향하는 충남노회 정산푸른볕교회(고광진 목사 시무). 청양군 정산면에 있는 교회는 '영농 목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2016년 설립됐다. 학창 시절부터 농촌에 대한 동경과 '생명 농업, 생명과 평화'에 대한 신학적 고민을 이어온 담임 고광진 목사의 목회적 준비가 연계됐다.

고광진 목사는 "농촌 교회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블루오션'이기 때문이다. 생명과 평화를 실현할 가치가 크기에 회귀할 필요성이 있다"며 "도시 교회가 생명 평화를 추구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농촌 교회는 적은 에너지로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광진 목사는 농촌 교회의 시작과 함께 '자비량 목회'를 선택했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하지만 '양계'와 '밭농사'를 하며 사례비를 받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갖췄다. 고단한 노력은 마을 주민 40여 명이 출석하는 건강한 교회를 이뤘고, 부족함 없는 농촌 사역의 동력이 됐다.

고광진 목사가 달걀을 수확하고 있다.
포대에 담은 닭똥을 주민들에게 나누는 모습.
교회 설립과 함께 시작된 양계 사역은 8년째 이어지고 있다. 교회 인근에 마련된 80평 규모의 양계장에선 600마리의 닭들이 자유로이 노닌다. 하루에 생산되는 달걀은 300여 알. 한 달이면 1만 개에 이른다. 농촌 교회를 운영하기에 부족함 없는 재정을 충족한다.

교회는 개척 첫해부터 결산액의 10분의 1을 적립해 자립 의지가 있는 다른 농촌 교회를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역은 확대되어 지난해에는 베트남 현지 농촌 교회에 양계장을 세워주는 성과를 이루었다. 고광진 목사는 "회원들에게 7년째 택배로 달걀을 보내고 있다. 양계와 목회를 연계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며 "단순한 양계 사업이 아닌 농촌 교회의 자비량 목회를 실현하고자 영적 건강성을 지키고 있다. 특별히 다양한 활동을 통해선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어렵지만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동역자들이 확산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산푸른볕교회는 농촌 마을에 꼭 필요한 교회가 되는 일에 집중한다. 농촌을 본래의 농촌답게 만드는 것이 교회의 사역 방향이기 때문이다. 농촌을 섬기기 위해서는 농사를 알고, 농부의 마음을 알아야만 구성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단순히 마을과 주민이 교회의 성장만을 위한 도구 정도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회적 고민도 더해졌다. 고광진 목사는 "평범한 농촌 교회 목사와 농부가 되고자 하는 농촌 교회 목사는 마을 주민과의 만남부터 차이가 있다. 농부 목사는 주민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고 접촉점도 다양해진다"며 "농촌 교회는 농촌을 사랑하고, 농부의 삶에 공감해야 한다. 농촌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있어야 하고, 공동체의 일원이 돼 좋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은 '닭똥'을 버려질 하찮은 분비물로 여겼지만, 고 목사는 그 안에서 복음적 가치를 발견했다.
정산푸른볕교회 7주년 예배.
농촌을 보고, 농부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니 '농촌의 필요'가 보이기 시작했다. 농촌 교회가 농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했지만, 자비량 목회로 진행 중인 '양계'에서 나오는 닭똥을 주목했다. 세상은 버려질 하찮은 분비물로 여기겠지만, 고 목사는 그 안에 가치를 발견했다. 천연 퇴비로서 농사에 매우 유용하며, 특히 밭에 사용하면 식물에 좋은 성분이 많아 농작물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보물과 같이 여겼다. 농부들 또한 대형 공장에서 사온 비료보다 순수한 닭똥을 사용한 비료의 효능을 높이 평가한다고 하니 농촌, 농부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광진 목사는 쉽게 버리던 닭똥을 정성스레 모으기 시작했다. 한 번 치울 때마다 200포대가 넘는 아주 좋은 자원이 축사에 쌓였다. 마을 주민들의 수요를 파악해 트럭 한가득 실은 닭똥 비료를 농부들의 밭에 일일이 배달했다. 무료 닭똥을 무료로 배달까지 해주니 주민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농사에 닭똥을 사용한 농부들은 수확한 농산물을 교회에 가지고 와 성도들과 나누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고광진 목사는 "양계장에서 나오는 닭똥이 농촌에서 이렇게나 귀하게 쓰임 받을 줄 알았겠느냐, '교회에 나오라'고 직접 전도하지 않았지만, 우리 교회의 닭똥을 제공받은 주민들은 고마운 교회, 마을에 꼭 필요한 교회로 인식했을 것"이라며 "농촌 교회는 농촌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농촌 공동체와 농촌 교회가 함께 상생하는 길, 복음 사역의 출발점이다"라고 전했다.

농촌 주민들을 위한 특별한 사역이 알려지면서 도시 교회 청년들도 생전 처음 '닭똥' 모으는 일에 봉사자로 참여했다. 지난여름에는 서울 소망교회 청년부가 '닭똥 전도' 사역을 지원했고, 담임 김경진 목사도 뜻 깊은 섬김에 동참했다.

교회의 특별한 목회 사역이 좋은 사례로 손꼽히면서 전국 각지에서 방문이 이어졌다. 후배 신학생부터 각 노회 교회동반성장위원들까지 농촌 교회의 작은 사역에 공감하며 새로운 꿈을 나눴다. 꿈 나누기의 핵심은 결국, 각자의 사역 안에 숨은 가치를 발견하는 것.

농촌의 작은 교회, 정산푸른볕교회가 보여준 작은 섬김은 어두운 세상을 밝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교회 본연의 모습을 일깨워준다. 닭이 울어야 새벽이 오고, 하루가 시작되는 것처럼,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며 주민들과 꿈꾸는 정산푸른볕교회의 헌신의 수고는 오늘 하루, 한국 교회가 지녀야 할 복음의 가치를 실현할 출발점이 어디여야 할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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