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지성과 따뜻한 가슴'의 사회를!
[ 독자투고 ]
작성 : 2024년 07월 19일(금) 14:43 가+가-

조상인 장로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경기 침체가 왔다. 경제성장이 곤두박질쳤고 기업마다 대량 해고 바람이 불었다.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자영업자들의 식당도 연쇄부도가 났다. 우리 사회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던 그때를 기억한다.

이때부터 가계소득이 감소하고 이혼은 급증했다. 이는 가정파탄으로 이어졌다. 아내는 가출하고 가장은 노숙자로 전락했다. 어린 자녀들은 조부모에 맡기거나 급기야 아동보호시설에 입소시키는 사태를 경험한 우리 사회다. 그리고 오늘날 '조손가정'의 문제가 태동됐다.

필자는 이때부터 우리 사회의 내재된 문제점들이 있었다고 본다. 경제문제가 사회문제로 연결된 근저에는 가족공동체에 대한 가치관의 인식이 있다. 오늘날 저출산문제도 이 시점에서 출발됐다고 본다. 전통적 유교문화사회인 우리나라에서 가족가치관이 경제문제로 인해 영향받은 것이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우리 인류의 건강을 다루는 4개의 학문이 있다. 의학은 사람의 신체적 건강을 다루고, 법학은 사회구성원의 정치적 건강을 다룬다. 신학은 정신적 건강을 다루며 경제학은 인간의 물질적 건강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네 가지 건강은 상호의존적이다. 우리 인류에게 이들 모두가 동시에 필요하다. 어느 학문이 각기 다루는 건강을 가장 잘 지키고 있을까, 아니면 어느 학문이 가장 못 지키고 있을까?

오늘날 경제학에 대한 신뢰가 낮을 것으로 짐작한다. 경제학에 대한 신뢰는 어제 오늘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미 19세기 초에 영국 평론가 토마스 칼라일은 경제학을 '암울한 과학'이라 불렀다.

이번 의료계의 집단 휴진 사태를 본다. 집단진료 거부는 의료공백을 가져와 피해가 환자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그동안 의료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 연장에 기여한 의학분야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의사들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기억하는가? '집단 휴진은 중증 환자에겐 사형선고'라는 발언이 한 의사만의 고언이 아니길 기대한다. '공공재'인 의사수를 의사협회가 결정한다(?)는 논리를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 일종의 '지대추구행위'나 다름없다.

지난 코로나사태를 통해 국민들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과 국가 컨트롤타워에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목도했다. '수요·공급'이라는 용어만 알아도 이해되고 해결되는 문제이다. '냉철한 지성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합의를 도출하고 지혜를 모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우리 경제학자들은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이자 케임브리지 학파의 창시자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의 후손들이다. 그는 빈민가 사람들의 찌든 얼굴을 바라보며 경제학을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도구로 가다듬겠다며 과거 위에서 미래를 목표로 현재와 평생 씨름했다.

마샬은 캠브리지대학 교수로 취임하면서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경제학자로서 '냉철한 지성(cool head) '으로 사회현상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분석해 달라, '뜨거운 가슴(warm heart)'로 결과물은 언제나 실생활과 빈민구제에 도움을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런던 빈민굴에 가보지 않은 자는 자신의 연구실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실사구시의 학문을 강조했던 학자였다. '경제'는 세계 10대 강국 대열의 선진국이지만 '정치'와 '국민의식 수준'은 여전히 아프리카 난민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국민들은 자기수준 만큼의 지도자를 뽑는다"는 처칠 경이 생각난다.

조상인 장로 / 안동 지내교회·고암경제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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