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심리적 번아웃의 문제
기독교인과 쉼6
작성 : 2019년 08월 14일(수) 00:00 가+가-
분명히 원하지 않음에도 우리의 가슴에는 우울, 불안, 초조함, 외로움, 공허함, 짜증, 분노와 같은 피하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이런 감정들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누구나 단순함, 고요함, 평화로움을 사모한다. 그러나 막상 이를 누리는 이는 많지 않다.

아무리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친구를 만나거나 좋은 휴양지로 떠나도, 마음이 걱정 근심과 같은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으면 우리는 쉰다고 말할 수가 없다.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쉼은 불행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현대는 그 어느 때보다 지식이 넘치고, 물질문명이 발전하여 편안함을 추구하는 시대이지만, 막상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마음의 문제만큼은 발전은커녕 퇴보한 것 같다. 특히, 외로움과 우울감의 문제는 매일 만나는 이들이 더 많아진 도시인들에겐 역설적으로 더 커졌다. 외로움은 혼자 있다고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 소외를 당할 때, 인간은 혼자 있을 때 보다 견디기 더 힘든 외로움을 느낀다.

어찌보면 다들 돈과 성공에 눈이 팔려 정신을 잃고 살고, 사람을 만나도 이해관계로 맺혀진 피상적인 만남이 대부분이고, 소통하고 싶어도 소통이 부재한 사회에서 이런 문제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정적 감정이 현대인을 지배하는 원인은 크게 사회적 요인과 개인의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사회적 요인을 보자. 사람들은 우울증과 고독을 개인의 문제로 보지만, 사실 이는 도시화의 부작용이다. 도시의 특징은 아파트 같은 밀집된 공간, 시간적 여유 없음, 자연의 부재다. 어쩔 수 없이 너무 자주 보는 사람들 사이에는 사소한 일로도 스트레스가 심할 수 있다. 서로 떨어져 살아야 소중함을 알고 반가움도 커진다. 공간적 거리의 가까움, 매일 부닥침이 소통을 더 힘들게 만든다. 집이나 직장같이 같은 공간에서 피하고 싶은 이들을 피하지 못할 때, 그 부담감은 엄청나다. 도시화를 추구하는 한 우울증이란 사회적 문제는 피할 길이 없다. 확실히 시골 사람들은 도시인들보다 우울증이나 외로움, 분노 등의 문제를 덜 겪고 산다.

또한, 현대사회는 한마디로 '성과사회'다. 입으로는 개인에게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무한경쟁을 통해 생산 능률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인간의 존재함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성과가 개인의 가치를 판단한다. 이로써 개인들도 모두 성공에 목을 매달게 만든다. 구조상 그 능률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들은 깊은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과잉경쟁 사회로 진입했다.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제대로 쉬지를 못한다. 감정노동자에게서 나온 '번 아웃'이란 개념이 이제 모든 직장인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번 아웃은 불이 활활 타 오르다가도 결국 재만 남듯이, 어느 순간 탈진이 되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기력해지는 상태가 오는 의학적으로 인정된 질병이다. 누가 사람들은 번 아웃 상태로 몰아가는가? 사람들은 이제 몸이 쉰다 해도 마음은 과거의 실수를 곱씹으며 우울해하고 뒤처질까 경쟁에서 밀려날까 불안해한다. 인간관계 역시 모두 경쟁과 계산이 들어가 있다. 다들 경쟁상대이고, 만남도 이해관계로 이루어진다. 사람이 상품이 되어서 결혼도 조건만남이 되었다.

성과사회는 개인의 쉼도 사회적 목표와 능률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성과사회는 수많은 광고를 통해 쉬기 위해서는 화려한 여행상품, 새로 나온 물건들을 소유해야 한다고 소비자를 유혹한다. 그런데 이 상품에는 모두 돈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이를 위해 빚을 내고 대출과 카드값을 갚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성과사회는 쉼도 상품으로 만들어 개인을 노예화하고 있다.

근원적으로 사회가 변화되기 전에는 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개인의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교통사고 다발지역에서는 어떤 요소가 그 장소에 교통사고가 많이 유발하는가를 분석하고, 방지책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다. 운전자의 책임은 그 다음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문제가 개인을 넘어 사회적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를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고 오래 걸리는 과제이다. 개인들이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은 이런 사회의 흐름에 저항하는 길이다. 교통사고 다발지역에서 주의하는 것이다.

무엇이 당신의 쉼을 방해하나? 사람들은 일 때문에 지친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현대인들은 일 자체보다는 과도한 부정적인 감정들 때문에 지친다. 내면에 조화를 누리는 사람은 크게 지치지 않고 많은 일도 잘 감당한다.

사람들은 주로 고통을 벗어나려고만 하지 고통의 원인과 의미를 살펴보려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스스로 일어나기보다는 불쾌한 생각에서 나온다. 문제는 이 생각들의 대부분은 본인의 무의식에서 자동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머릿속엔 주기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엄습한다. 이 감정들은 까탈스럽고 통제하기도 어렵다.

여기에 대한 필자의 조언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것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니체의 명언 "어떤 문제가 분명해지면, 그것은 더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은 정말 크게 도움이 된다. 삶이란 원래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다. 그중 인간관계란 피할 길이 없으면서도 가장 많은 상처를 만든다. 인간관계는 본래 어렵고 삶은 원래 고단한 것이다. 원래 어렵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수용력이 생긴다. 이 사실을 이해할 때 자신과 남을 탓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한다. 조건 없고 변함없는 진정한 사랑이 있는가? 이런 꿈은 빨리 깰수록 좋다. 사람들은 외롭다고 한다. 하지만, 진실한 소통이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 순진하고 큰 기대는 버릴수록 좋다. 얼른 현실로 돌아와라. 실수가 잦아서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고? 그러나 실수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할까? 머리로 아는 것은 현실이 아니다. 실수 없는 배움은 없다. 실수했다고 남이나 자신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 잠언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고 했다(잠언 24:16). 넘어지지 않은 것은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꾸준히 노력하며 살 뿐이다.

둘째, 다들 부정적인 감정을 벗어나라고만 한다. 이를 위해 수많은 책, 수많은 조언을 찾아 다닌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사실 이런 내용을 머리로 아는 것은 현실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런 감정들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늘 반복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들수록 이런 감정은 오래 머문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싸우려 들지 말고, 그냥 고요히 지켜보라. 어떤 감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해지고 사라지게 되어 있다. 이를 알 때 우리의 마음은 한결 수월하게 우리의 감정을 대할 수 있다. 진정 도움이 되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전 연습이다.

셋째,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빠져드는 과도한 SNS, 인터넷 검색, 게임, 쇼핑과 같은 것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우리는 잠깐 문자나 정보를 검색하려고 스마트 폰을 열지만 늘 이런저런 사이트를 방문하고 짧게는 5분에서 보통 20~30분씩 시간을 보내게 된다. 스마트폰은 당신보다 스마트하게 설계되어 있다. 스마트폰과 게임의 프로그램은 중독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 합법적인 수준에서 가장 빠르고 심하게 중독되도록 설계되었다. 죄다 돈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스마트 폰과 인터넷으로부터의 적절한 거리를 두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면 당신의 뇌는 늘 피로하게 되어 있다.

넷째, 마음의 고통을 아프다고 도망가지 말라. 통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No Pain, No Gain!'이라 한다. 고통이 우릴 죽이지 않는다면 이는 강해질 기회다. 평온한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가 있나? 삶의 지혜와 통찰은 고통에서 훨씬 많이 배운다. 어쩔 수 없이 다가오고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그 유익을 묵상하자. 길게 보면 고통의 양만큼 기쁨도 커진다. 또한, 타인과 사회를 위해 고통을 감내할 때, 이는 추천할 만한 영성이다.

다섯째, 자신의 재능을 과대평가하지도 말고, 재능이 많다 해도 재능의 노예가 되지 말자. 너무 많은 일을 하려는 것도 욕심이다. 많은 일을 하려 들지 말고 그냥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자. 번 아웃은 사람들이 멈추지 못할 때, 마음이 주는 감사한 경고다. 안 그러다 죽는다.

끝으로 우리는 욕망과잉 사회에 살고 있다. 일의 성취와 쉼 모두를 얻고자 하는 것도 욕심이다. 그냥 적당할 때 만족하며 살자. 여러분이나 저나 일 때문이 아니라 욕망과잉으로 지치는 것이다.



이민규 교수/한국성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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