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서 순국
[ 3.1운동100주년기획 ]
작성 : 2018년 12월 25일(화) 18:09 가+가-
기독교교육사상가열전 5. 김병조 <3>마지막 여생을 조국 위해 바치다
김병조 목사는 1933년 4월 귀국 길에 올랐다. 3.1운동 때의 일은 공소시효가 끝난 뒤였다. 거주지가 용천군 양서면 일대 30리로 제한되었으므로, 그곳에 소재한 동상·북평·신서교회를 목회하면서 경신소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1941년 정주군 묘두산 아래로 거처를 옮기고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광복이 되자 1945년 9월 조만식과 함께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11월에 광복단을 조직하여 반탁운동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1946년 12월 24일 소련군 특무대에 체포된 후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로 이송되었다가 1950년 가을 73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는 김병조가 북한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사회주의계열로 분류했다가, 1990년 한·소 수교 후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사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공훈을 기려서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3월 1일 태화관 독립선언식장에 불참했다고 하여 소극적 참여자로 인식되던 오해는 김형석이 '일재 김병조와 민족운동'(남강문화재단출판부, 1993년)을 출간하면서 해소되었다. 남북 분단이 낳은 비극은 45년이 지난 후에야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재평가 받을 수가 있었다.



조국 독립과 민족 구원을 위한 애국의 교육



김병조 목사는 오랜 기간의 목회와 많은 저술활동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가 남긴 몇 가지 글과 유품을 통해 추리해보면 후학들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의 유일한 유묵(遺墨)으로 판명된 글귀는 '書味淸於水養魚道心靜似山藏玉'이다.(글을 쓰는 맛은 물속에 고기를 기르는 것보다 맑고, 도를 닦는 마음은 산 속에 감춰진 옥과 같이 고요하도다) 그 속에는 선비 출신의 목회자로서의 학문적인 품위와 자부심이 나타난다. 3.1운동이 일어나자 '격고아한동포문'(檄告我韓同胞文)이라는 격문을 통해 거족적인 참여를 호소했던 그는 일제의 관리로 근무하는 부일배(夫日輩)들에 대하여서는 경고관헌문(警告官憲文)을 발표하여 엄중하게 경고하였다.

"이르노니 너희 조선인으로 왜놈의 관리된 자야 양심에 따라 스스로 반성하라… 의를 의지하고 일어선 2천만 민족이 모두 너희를 쳐 죽일 생각임을 모르는가. 아니면 절개를 지키며 숨져간 30만 충령이 이미 너희를 죽이기로 한 결정을 모르는가. 위로는 하늘이 두렵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이 부끄럽지 않느냐.…"

독립운동가 김병조 목사는 목회자인 동시에 교육자였다. 특히 개종하기 전 서당의 훈장이던 그는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후에도 변산학교(평북 구성) 인성학교(중국 상해) 삼성학교(중국 집안) 광명학교(중국 집안) 신일학교(중국 목단강) 경신학교(평북 용천) 등 목회지마다 학교를 설립하고 직접 교육에 종사했다. 한국교회사에서 그만큼 목회와 교육(그것도 학교교육)을 병행 실천한 목회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윤춘병 목사(감리교 감독)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1935년 장로회 총회 종교교육부에서 발행한 '희년기념목사대설교집'에 실린 김병조 목사님의 '중생'(重生)이란 설교를 보면 목사님의 민족주의적 애국사상을 엿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그루의 나무도 버리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우리 민족을 버릴 수야 있으랴' 하고 굳게 믿었기에, 북풍이 몰아치는 삼천리 강산에 새 봄을 앞당기기 위해 한 몸을 국가와 민족에 바쳐 조국 재건의 그릇이 되고자 일생을 사셨다."

이처럼 김병조 목사는 평생토록 민족주의적 애국사상을 실천하기 위한 삶을 살았고, 목회와 교육은 그것을 실행하는 수레의 두 바퀴였다. 그는 3.1운동 민족대표로 서명한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15년간이나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도 목회자와 교육자의 길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독립을 성취하는 것이 그의 필생의 소원이었다.

1921년 3.1독립선언 제2주년을 맞아 상하이에서 개최된 기념식. /출처 독립기념관
김형석 목사 / 역사학 박사, 통일과역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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