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정에서 독립운동에 종사
[ 3.1운동100주년기획 ]
작성 : 2018년 12월 18일(화) 10:22 가+가-
기독교교육사상가열전 5. 김병조 <2>상해·서간도에서 디아스포라 선교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글. /출처 독립기념관

중국 상해에 도착한 김병조는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고 곧장 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었다. 8월 18일 외교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하자 그는 목사와 장로 출신 의원 11명의 연명으로 '한국시사진술서'를 발표하고, 이어 손정도와 '한국기독교 대표들이 중국기독교계에 고하는 글'을 발표했다. 또 '독립청원서'를 작성한 후 김규식(金奎植)을 통해 국제연맹에 제출함으로써 독립운동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1920년 3월 의정원 의원을 사임한 김병조는 국무원 산하 선전위원회 지방선전부 이사로 선임되어 국내 선전활동을 총괄했다. 1921년 4월 신익희(申翼熙)와 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를 창립하여, 한중 양국민의 관계증진을 도모하고 한중 합작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의정원 의원 시절 김병조가 가장 힘을 쏟았던 것은 독립운동사를 정리·편찬하는 일이었다. 안창호(총재) 이광수(주임) 이원익(위원) 등과 함께 참여한 임시사료편찬회가 '한일관계사료집' 4권을 편찬하고 해산하자, 김병조는 혼자서 사료집을 토대로 '한국독립운동사략'을 저술했다. 이 책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서부터 1920년까지의 한국근대사를 외세 침략과 이에 대항한 한민족의 투쟁이라는 시각에서 정리한 것이다. 1921년 상해 선민사에서 한글판과 중문판으로 발간되자 같은 시기에 간행된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와 함께 널리 보급되어 읽혔다. 이어 1924년 만주 집안현에서 '독립혈사'와 '대동역사'를 저술했다.

국제적인 상업도시이던 상해에는 일찍부터 한인이 상당수 거주한 탓으로 이들을 대상으로 1914년 한인교회가 설립되었고, 1917년에는 여운형이 전도인으로 부임하여 교회를 이끌었다. 그러던 차에 3.1운동이 일어나자 국내에서 망명해온 지사 가운데 목사만 10여 명에 이르렀다. 이에 장로교 총회는 김병조를 담임목사로 임명하고 교회를 인준했다. 당시 임정에는 목사인 손정도(의정원 의장) 정인과(의정원 부의장) 이원익(의정원 의원) 조상섭(학무총장) 송병조(재무총장)를 비롯해 기독교인으로서 이승만(국무총리) 안창호(내무총장) 김규식(외무총장) 이동휘(군무총장) 신익희(내무차장) 유동열(참모부총장) 등이 요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었다.

따라서 김병조는 상해한인교회와 교민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는 부설 인성학교를 통해 상해한인사회의 중추적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정 내부에 정쟁과 파쟁으로 갈등이 심화되었고, 1923년 5월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국민대표회의까지 결렬되자 김병조는 서간도로 이주하여 집안현 화전자교회와 패왕조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이곳은 고향 평북과 압록강을 경계로 마주한 '지척지간'이고 이주민은 대부분이 서북 출신이었다. 이곳에서 김병조 목사는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았고 1926년 남만노회장에 선출되었다.

1928년에는 북만주의 중심 팔면통교회로 부임했는데 이곳은 마적의 활동이 심한 곳이었다. 장로교총회록에는 이 같은 팔면통교회의 위험한 상황이 수시로 보고되어 있다.

"간도 목능현 팔면통교회는 106호에 1집 외에는 다 믿는 집이 됨으로 재미가 있는데, 도적의 위험이 심하여 교역자의 내왕이 곤란하던 중 마적 300여명이 가옥 31호를 불 지르고, 교인 18인을 때려죽이고 부상자도 34인이오. 80여인을 잡아간 고로 러시아돈 4만여 원을 주고 찾아왔다." - <8회 총회록>(1919)

그러나 그는 아랑곳 않고 팔면통교회에 부임하여 시무하는 5년 동안 두 차례나 마적에게 붙잡혀가는 곤욕을 치르면서도 목회와 교육에 힘썼다. 1932년에는 북만노회장으로 선출되어 재만 한인교회를 이끌었다. 이처럼 김병조는 3.1운동 이후 계속된 객지생활에도 개의치 않고 가는 곳마다 목회와 교육에 앞장 선 디아스포라 선교의 원형이었다.

김형석 목사 / 역사학 박사, 통일과역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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