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자유·통일 위해 목숨 바치다
[ 3.1운동100주년기획 ]
작성 : 2018년 12월 04일(화) 15:00 가+가-
기독교교육사상가열전 4. 조만식 <3>조만식과 북한의 3.1절 기념식

1924년 졸업앨범에 실린 숭실학교 교직원들 모습 중 앞줄 맨 오른쪽에 조만식장로가 보인다. /사진제공 숭실대 기독교박물관

명년이 1919년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2500만 우리 동포가 1919년 3월 1일 일본을 향해서 독립만세를 불렀고,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이 4월 11일 임시정부를 만들어서 독립운동을 계속 이어갔고, 그 결과 오늘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

그러면 조만식은 3·1운동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조만식은 3·1운동의 기독교 측 대표였던 남강 이승훈의 측근이었다. 조만식은 1913년부터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의 교사였고, 1915년부터 3·1운동 직전까지는 교장으로 있었다. 따라서 조만식은 누구보다도 3·1운동의 지근거리에 있었다. 뿐만이 아니다. 3·1운동 때 일본의 박해가 가장 컸던 사건이 바로 남한에서는 제암리교회 사건이라면 북한에서는 모락장 장터사건이었다. 모락장은 바로 조만식의 고향이었다. 이곳에서 일본헌병대와 이 지역의 기독교인들이 충돌하였고, 헌병대 전원이 전멸했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사망했다

하지만 조만식은 3·1운동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3·1운동의 지도자 이승훈은 3·1운동 이후에 임시정부를 세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3·1운동 이전에 이미 현순 목사를 상해에 파견하여 임시정부를 만들 준비를 하게 하였다. 이승훈은 조만식에게도 같은 임무를 맡긴 것이다. 조만식은 일본 명치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새로운 정부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조만식은 3월 3일, 3·1운동 직후 평양을 탈출하여 상해로 가려고 했다. 이 때 그와 함께 동행했던 인물은 도인권이었다. 그는 나라가 망하자 황해도에서 김구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6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조만식과 도인권은 상해로 가기 위해서 평남 강동군 열패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에 있던 일본 경찰에 붙잡혀서 1년 징역을 선고 받았다. 결국 그는 임시정부 수립에 동참하지 못하고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다. 도인권은 체포되지 않고 국외로 탈출하여 임시정부의 군사부장을 맡기도 했고, 1930년 이후에는 감리교 목사가 되어 목회활동을 하였다.

조만식과 3·1운동의 관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1946년 3월 1일은 해방 후 처음 맞이하는 3·1절이다. 당시 북한을 지배하고 있던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은 3·1운동은 부르주아 종교인들이 주도했기 때문에 실패했고, 이제 진정한 혁명은 소련이 주도하는 공산주의 혁명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들은 해방 후 첫 번째 맞이하는 3·1절을 자신들이 1946년 2월에 만든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계기로 삼으려고 했다.

당시 북한의 민족지도자이며, 기독교 장로인 조만식은 소련군에 의해서 신탁통치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연금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자들의 3·1절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장대현교회에 따로 모여서 기독교인들만의 3·1절 기념행사를 하였다. 소련군은 군대를 동원해서 이 모임을 해산시켰다. 그러나 신자들은 집으로 가지 않고 조만식 장로가 갖혀 있는 평양 고려호텔로 가서 조만식의 석방을 외치며 찬송을 불렀다. 월남한 북한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이곳에서 불렀던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과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찬송을 기억하고 있다.

조만식이 연금되어 있던 고려호텔은 북한사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공산주의의 학정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고려호텔을 돌며 하나님께 이 민족을 구해달라고 기도했다. 동아일보는 1949년 3·1절 기념 예배 후에도 여전히 조만식이 유폐되어 있는 고려호텔을 순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2019년 삼일절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조국의 자유와 통일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조만식을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박명수 교수 / 서울신대 ·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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