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킬링필드'의 땅으로 가는가?
[ 땅끝편지 ]
작성 : 2024년 04월 17일(수) 15:01 가+가-
캄보디아 오태근 선교사편 (1)

캄보디아의 제자양육 1기생과 함께(2002년).

오태근·이세금 선교사 부부
"선교사님은 왜 캄보디아에 선교사로 오셨나요?" 한국에서 캄보디아로 비전트립을 온 청년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다. 선교사들이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이라고 본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이 땅으로 이민 보내셨습니다."

2000년 6월 첫 주일에 수유동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식 예배를 드릴 때 이광순 교수님이 선포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두 귓가에 울린다. "너는 가라. 그리고 그 땅에서 복의 근원이 되어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 친척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고, 그는 이주한 새로운 땅에서 주께 받은 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었다. 너희도 캄보디아에 들어가서 기독교인이 1% 미만인 예수 복음의 불모지에 예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라."

우리 가정은 그 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았고 "아멘"으로 순종했다. 우리 가정은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받기전 1996년과 1997년 필리핀(김용우 선교사)에 두 차례, 1998년과 1999년에는 캄보디아로 수유동교회 청년들과 여름 단기 선교를 다녀왔다. 그런데 캄보디아에 와보니 필리핀 선교 때와는 다른 감동과 강한 선교적 도전을 받았다. 특히 1975~1979 년에 일어난 폴포트 공산당의 혁명으로 발생한 학살로 당시 약 700만 인구 중 1/3인 200만 명의 무고한 주민이 희생 당한 뚤슬랭 고문 박물관과 킬링필드 현장을 방문했을 때의 충격은 너무 컸다.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가정에 캄보디아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셨다. 사도행전 16장에서 사도 바울에게 환상 가운데 나타난 마케도니아 사람이 서서 말하기를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했던 것처럼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도 맑은 눈을 가진 캄보디아의 어린 영혼들이 우리를 초청하고 있었다.

1999년 당시 수유동교회 부교역자였던 나는 세 곳의 목회지 선택을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첫째는 포천에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 둘째는 뉴질랜드의 한인교회 담임목회, 그리고 선교사로 가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 네 식구가 함께 결단하고 마음을 모은 것은 캄보디아에 예수 복음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선교사로 가는 것이었다. 이미 아내 이세금 선교사와 두 아들(당시 초등학교 6 학년, 3 학년)은 캄보디아에 두 번의 단기 선교를 다녀오고 나서 캄보디아라는 나라와 사랑에 빠졌다. 우리 가정이 캄보디아 선교사로 가려고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나를 아껴주던 선배 목사 몇 분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렸다. "왜 하필 공산주의 나라에, 불교의 나라에, 가난하고 종교의 자유도 없는 곳에 가려고 하는가?" 그러나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주님이 가라고 하십니다. 기도해 주세요." 예수님 십자가의 사랑으로 값 없이 구원 받았고, 은혜를 받았으니 아직 예수를 모르는 곳에 교회가 없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내가 받은 사명의 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24년간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면서 많은 문제와 고난의 시간이 있었으나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캄보디아로 보내셨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한다. 드디어 2000년 6월 4일 파송예배를 마치고 6월 5일 김포공항으로 출발했다. 우리의 손에는 각자 자기가 꼭 필요한 짐만 챙겨 담은 가방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공항에는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을 비롯한 평소 가까이 지내던 성도들이 배웅 나왔다. 비행기 출발 전에 함께 웃으며 담소를 나누던 교우들과 드디어 작별의 순간이 왔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제 사랑하는 가족들과 교우들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문득 사도행전 20장에 기록된 사도바울과 에베소 장로들과의 눈물의 이별 장면이 떠오른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흘리는 이 눈물은 우리가 다시 만날 때에는 캄보디아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간증하며 기쁨의 눈물로 변하리라. 이런 기대와 소망을 품고 킬링필드의 나라 캄보디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하늘로 솟아 오르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 부부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킬링필드'의 캄보디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리빙필드'로 바꾸어 주소서. 우리 가정이 예수 복음의 씨앗으로 그 땅에 심겨지게 하소서."

오태근 목사 / 총회 파송 캄보디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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