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까지 용서하여야
[ 가정예배 ]
작성 : 2024년 04월 24일(수) 00:10 가+가-
2024년 4월 24일 드리는 가정예배

김인주 목사

▶본문 : 마태복음 18장 21~35절

▶찬송 : 263장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본문이 번역되었다. 곱하기 기호가 없던 시대였고, 성경 원문에 뚜렷하게 기재된 것은 아니다. 베드로가 율법을 따라 질문하였다. "일곱 번까지면 되나요?" 예수님은 대답하셨다. 일곱 번, 일흔 번. 어떻게 이해할지 번역자와 독자는 선택해야 한다.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일곱 번으로는 부족하고 일흔 번 정도는 해야지', '일곱 번에 일흔 번을 더 얹어서 일흔일곱 번이 좋지 않을까'.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는 게 답이야' 이 세 가지 모두 끝없는 용서를 말하고 있다. 율법에 규정된 대로 일곱 번을 용서하는 것도 세상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훨씬 더 많은 용서를 권하신다.

사회나 정치도 복수의 복수로 이어지는 시대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비슷한 앙갚음이 자행되곤 한다.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이 많이 살상되는 곳도 있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기보다 복수의 칼을 품고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은 용서가 없는 세상을 책망하신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을 사람들이 주님께로 끌고 와서 고소하였다. 예수님은 신중하게 대답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의기양양하던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다 그 자리를 떠났다. 주님은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용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하셨다. 용서의 상징은 바로 십자가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희망이요 구원이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첫 번째의 단계가 이웃을 용서하는 것이다. 하지만 용서는 쉽지 않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여 용서보다 이웃을 정죄하고 자신에게 피해를 준 이웃에게는 여러 모양으로 복수한다. 복수의 상처는 회복되기 어렵다. 사랑은 용서에서 시작되는데, 배우고 훈련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임금으로부터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종은 용서의 귀한 교훈을 체험하였지만, 실천하기를 거부하였다.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구분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허물투성이의 존재다. 하나님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는 삶이 뒤따라야 한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나 혼자 상처받고 스스로 괴롭히며 살아가는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증오를 품고 있는 것인가? 복수심에 얽매여 살아간다면 억울한 일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는데, 나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아주 모순된 삶이요, 병들었다는 심각한 증상이다. 용서하는 삶으로 건강한 신앙인이 되어 세상을 밝게 만들자.



오늘의 기도

자비로우셔서 우리들을 용서해 주시는 주님, 우리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에서 용서하는 삶으로 하늘의 기쁨을 맛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인주 목사/봉성교회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