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기다리며
[ 땅끝편지 ]
작성 : 2024년 03월 30일(토) 15:07 가+가-
멕시코 최남영 선교사편(완)

최남영 선교사의 가족들.

멕시코 선교사로 살아온 지 27년 째 되었다. 아내와 어린 두 딸 네 식구가 정착했고, 이듬해 쌍둥이 아들을 선물받고 기뻐했던 그날의 감동, 이후 외할머니까지 합류해서 일곱 식구가 되었다. 3세대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옹다옹 티격태격 살아온 세월들이 아득한 시간이 되었다. 매일 복작되던 집안이 하나 둘씩 모두가 제 갈 길 찾아 흩어지고, 선교지에서 손주 넷을 키워 내신 외할머니(김성애 장로)도 90세가 되던 지난해 하늘나라로 떠나셔서 우리 부부만 달랑 남게 되었다. 서로의 이별은 아쉽지만 정처없는 나그네 인생이 아닌가.

지나온 날을 세어보니 나 혼자 선교사가 아니었고, 아이들 넷이 없었다면, 어머니 역할이 없었다면 사역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름도 빛도 없는 선교지 무명 용사들이 아닌가. 무엇보다 아내의 내조를 어디에 견주랴. 젊은 날 나 홀로 선교 열정에 선교사로 나간다고 결정하던 때도 묵묵히 따라 주었다. 무남독녀 외딸로 곱게 자라 궂은 일 조차 모르고 살던 사람이다. 선교지에 오자마자 선교센터 공동식사 주방일, 단기선교팀이 오면 1주일 내내 식사 준비하고, 한 주도 빠짐없이 한인교회 예배 후 식사 준비까지. 아내의 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피로가 너무 컸을까? 2020년 추수감사절 준비를 앞두고, 예배당 타일 바닥에 갑자기 넘어졌고, 정신을 잃었다. 피가 낭자한 몸을 들쳐 업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장시간 머리 앞 뒤쪽을 절개하고 뇌 수술이 진행됐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왼쪽 사지가 마비되고, 눈도 입도 손도 제 기능을 잃었다. 무엇보다 콩팥 기능이 상실되고, 즉시 강제 투석이 시작됐다. 멀쩡하던 사람이 한순간 중환자가 되었고, 전두엽 충격은 기질까지 바꾸어 놓았다. 흩어진 자녀들이 달려오고 매일 교대로 돌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제 자리로 돌아가니 돌봄이는 내 홀로 몫이다. 일상이 바뀌고 꿈 같은 병실의 하루는 너무 길었다. 수술 흉터는 깊었지만 회복력은 강했다. 마비가 풀리고 제 기능이 돌아왔지만 망가진 신장은 소생이 불가능했다.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고, 이겨내야만 했다.

어느 날 친구 목사에게 전화를 받았다. 2022년도 장신대 총동문회 선교부문 장한 동문상 시상자로 결정되었으니 시상식에 참여하라는 연락이었다. 깜짝 놀랐다. 내가 어떻게? 상과 무관하게 살다 보니 충분히 놀랄만 했다. 총동문회는 매년 연초 제주에서 열렸고, 오랫동안 기회가 없던 제주를 꼭 가보고 싶었다. 그해 1월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도착한 직후 보건소 검사에서 코로나 양성이 나오고 말았다. 검사기관은 우리를 충남 홍성의료원 격리실로 보냈고, 10일 격리기간 동안 제주 동문회는 꿈 같이 날아갔다. 시상식은 영상메시지로 대신했고, 그 사연을 대신 전하던 친구 목사가 목이 메인 채 눈물을 흘리자 모두가 숙연해졌다고 들었다. 친구 목사가 대신 상패와 부상을 수여했고, 나중에 전달 받았다. 제주 방문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번 기회에 신장이식을 문의 해봤다. 혈액형은 서로 다르지만, 한국의 최신 의료기술은 그 조차도 가능케 했다. 공여자인 나와 수여자인 아내가 함께 경희의료원에 입원했다. 한 주간 입원해서 수술 가능여부를 보는 검사들이 진행되었고, 검사 마지막 날 공여자의 전립선이 의심된다며 정밀검사를 요청 받았다. 한번 더 조직검사까지 진행해 본 후 전립선 암 판정을 받았다. 이식절차는 그 즉시 멈춰지고, 환자가 뒤 바뀐 채 어렵게 나의 수술 일정을 잡았다. 힘든 수술 과정이지만, 초기발견의 은혜가 아닌가. 한달 여정 후 귀국 예정이 우여곡절 4개월간의 장기 치료가 되었지만 그 중에도 동료, 친구들의 사랑과 관심을 어찌 잊으랴.

사도 바울만큼 약함을 기뻐하고 자랑할 수는 없어도 여기까지 도우신 회복의 손길은 얼마나 큰 감사인가. 아내가 쓰러진 이후 3년째 여전히 매일 매일 투석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작년엔 아내 왼쪽 허벅지 고관절 수술 후 어쩔 수 없이 절룩거리는 발걸음이지만, 약할 때 강함 주시는 믿음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유다.

지나온 27년의 선교사역은 결코 평탄치 않았지만 가족이 함께 했고, 동료들이 도왔으며, 파송교회와 한국교회 친구들의 아름다운 협력이 정말 소중했다. 무엇보다 작년 가을, 홀연히 떠나신 어머니 손길까지 주님의 크신 도우심이요, 은혜였다. 또한 땅끝편지를 10회 연재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아주 귀한 기회였다. 지면을 통해 감사를 전하며,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오늘도 여전히 저 약속의 땅을 향하여… VAMONOS!!(가자!!)



최남영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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