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80주년...우리 속에 여전히 뜨거운 '김마리아 애국심'
[ 아름다운세상 ]
작성 : 2024년 03월 19일(화) 15:40 가+가-
서거 80주년 맞아 기념행사, 업적 재평가 필요성 강조

김마리아 서거 제80주기 추모식이 지난 13일 정신여중·고에서 개최됐다.

"나는 일본의 연호를 모르는 사람이라.
조선 사람으로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남자가 활동하는데 여자가 못 할 이유가 있소?"
- 애국부인회 사건으로 체포돼 심문 받을 때 김마리아의 항변


2.8독립선언서를 국내로 밀송해 3.1운동을 주도적으로 펼친 김마리아는 일제의 혹독한 고문을 겪고 상해로 망명했다. 당시 도산 안창호가 결혼을 권유하자 김마리아는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였다"며 반려했다. 대한의 독립과 결혼한 김마리아는 조국 광복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44년 3월 13일 동정녀의 삶을 마쳤다. 1923년 안창호는 "그 같은 여성동지가 10명만 있었다면 대한민국은 독립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3월 13일 정신여중·고에서 열린 김마리아 서거 제80주기 추모식에서 학생들이 기도하고 있다.
평생 대한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여성 지도자, 김마리아(金瑪利亞, 1892-1944)가 서거한 지 80주년을 맞았다. 애국여성 지도자 김마리아의 신앙과 투철한 민족 정신, 그리고 조국독립과 여성 교육에 헌신한 그녀의 삶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마리아는 황해도 소래, 한반도 내 개신교 최초 교회를 설립하는 데 주요 공헌한 광산 김(金)씨 성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15년 동경여자학원에 입학해 수학 중 1919년 2.8독립선언서를 국내에 비밀리에 반입해 유포하며 국내 3.1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일경에 의해 피검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간부(윗줄 가운데가 정신여학교 4회 졸업생, 회장 김마리아).
이후 김마리아는 정신여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 항일여성운동 활성화를 모색했다. 1919년 10월 여성계 대표 18명이 모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발족하고 김마리아가 회장에 선출됐다. 애국부인회는 군자금 2000원을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에게 보내며 여성 독립운동을 전개해갔다.

1922년 김마리아는 남녀평등과 여성참정권을 주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서 여성최초로 임시정부 황해도 대의원에 선출됐다. 1923년엔 중국 상해에 이어 미국으로 망명해 1932년 귀국 때까지 10년 이상을 해외에 머물며 교육으로 실력을 양성했다. 1928년 미국 뉴욕에선 여성한일단체 근화회를 이끌면서 만천하에 애국투쟁 운동을 확산시켰다.

"독립이 성취될 때까지
우리 자신의 다리로 서야 하고
우리 자신의 투지로 싸워야 한다."
- 독립기념관 비석에 새겨진 순국선열 김마리아의 어록


옛 정신여중고 터에 있는 회화나무. 대한애국부인회 산실로 활약했던 정신여학교가 일제의 수색을 피해 태극기와 각종 비밀문서들을 감출 때 이 고목을 이용했다.
1932년 망명생활을 마치고 고국 땅을 밟은 김마리아는 원산 마르다윌슨 여자신학교에서 성경과목을 가르치며 여성들에게 신앙과 민족교육을 실행했다. 1934년 9월 장로회여전도회연합대회(여전도회전국연합회) 총회에서 제7대 회장으로 선임돼 1938년 10대까지 여전도회를 이끌었다. 이때 1933년 20여 개의 지역연합회가 1934년 이후 50여 개로 확대되는 등 여전도회가 총회에서 승인된 이래 가장 큰 규모로 발전했다.

김마리아 서거 제80주기 추모식이 열린 정신여중·고 내 김마리아회관.
"빼앗긴 인권을 찾고
빼앗긴 국권을 회복할
최대의 목적을 향해서
우리 부인들에게는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 김마리아가 초안한 대한애국부인회의 취지문 中


일제강점기에 김마리아는 여전도회 회장으로서 국민의례로 신사참배를 강요당하자 총회를 유회시키는 등 끝까지 굳건한 신앙으로 항일독립정신을 지켰다. 마르다윌슨 여자신학교에선 1943년 신사참배 거부로 학교가 폐교될 때까지 후학을 양성했다.

학교가 폐교되던 해 12월 원산의 자택에서 졸도해 중태에 빠진 김마리아는 평양 기독병원에 입원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이듬해 1944년 3월 13일 향년 53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그녀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을 기려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3월 13일 정신여중·고에서 열린 김마리아 서거 제80주기 추모식에 참여한 학생들.
# "우리 생애도 김마리아처럼"

이러한 김마리아의 신앙을 기반으로 한 애국애족의 정신이 80년이 지난 오늘날 계승되고 있다. 서거 80주년이 되는 지난 13일 제80주기 추모식이 정신여중·고등학교 김마리아회관에서 사단법인 김마리아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렸다.

3월 13일 정신여중·고에서 열린 김마리아 서거 제80주기 추모식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기도하고 있다.
추모식에서 정신여학교 학생들과 관계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예식에 참가해 80년 전을 기억하며 김마리아의 생을 기렸다. 그들은 김마리아의 자주독립운동과 기독교 신앙, 신교육의 탐구정신 등을 가슴 깊이 새기며 그 고귀한 유훈을 전승, 선양하자고 다짐했다.

추모식에 참여한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은정화 회장은 "참된 신앙의 길을 걸었던 김마리아를 통해 우리가 3.1운동을 기억하고, 우리도 정직하고 신실하며 용기 있는 믿음의 은혜가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며 "우리 생애도 김마리아처럼 믿음의 발자취를 남기고 이 땅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거룩하게 남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추모식에서 학교법인 정신학원 전 이사장 이군식 목사(영광교회 원로)가 설교했다.
# "김마리아의 애국활동, 재평가 받아야"

추모식에서 학교법인 정신학원 전 이사장 이군식 목사(영광교회 원로)는 '김마리아의 신앙과 정신' 제하로 설교하며 "김마리아의 애국활동을 오늘날 재평가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한 자에게 수여하는 건국훈장과 관련해 그는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장-대통령장-독립장-애국장-애족장 등 5등급으로 나뉘는데, 김마리아와 유관순은 3등급에 해당하는 독립장을 추서받았다"며 "그러나 정부는 2019년 3.1절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에게 1등급에 해당하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가로 추서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53년간 여성으로서 독립운동한 김마리아 열사도 서거 80주년을 맞아 재평가돼야 한다"며 이를 통해 "김마리아의 신앙과 정신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자유의 가치와 억압당하는 자가 없도록, 김마리아의 정신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1983년 조직된 김마리아기념사업회(이사장:이성희)는 전기 출간, 동상 건립, 기념행사, 기념음악회, 어록비 제막, 연극 후원, 흉상 제막, 토론회, 학술강연회, 특별전시, 학술대회, 뮤지컬 공연 등 김마리아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힘써왔다.

또한 김마리아기념사업회는 2018년 '훈격 상승(독립장->대한민국장)을 위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2019년 김마리아선생 훈격 상승 조정을 위한 청원서와 서명서(1만 9876명)를 제출하는 등 김마리아의 애국활동 재평가를 위해 노력해왔다.


최샘찬 기자

2020년 여전도회관에서 열린 3.1절 101주년 김마리아 전시회.
서울보증SGI에 건립된 김마리아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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