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이은 '충성'이 대 이은 '축복'으로
[ 총회다음세대신앙전수모범가정 ]
작성 : 2024년 05월 15일(수) 08:55 가+가-
우수상 박기상 장로·이정임 권사 가정

총회가 진행한 다음세대신앙전수모범가정 시상식에서 김의식 총회장으로부터 우수상을 받는 박기상 장로와 이정임 권사.

우수상을 받은 박기상 장로 가정.
우수상을 받은 이정임 권사와 4명의 아들 목사.
#박기상 장로 가문 이야기



조부 박귀조 장로는 100년 전인 1924년 4월, 집으로 전도하러 온 미국남장로교 크레인 선교사와 목영석 목사로부터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했다. 바로 그 주일부터 동네 청년 30명을 이끌고 10리 길의 교회를 다녔고, 1년 후에는 집을 개방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2년 후인 1927년 9월에는 집 마당 앞에 흙벽에 초가지붕을 한 14평짜리 예배당을 지었는데, 그 교회가 현재 순서노회 대봉교회(당시 봉서교회)이다. 박귀조 장로는 1936년 5월 장로 장립 후 시무하는 동안 마을 사람 중 전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그 결과 마을 사람 대부분이 교회를 나오게 됐다. 일제가 중일전쟁 후 집요하게 신사참배를 강요해왔음에도 박귀조 장로는 신사참배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 결과 일본 순사는 예배를 방해하고 끝내는 교회를 폐쇄해 버렸다. 그 후로 아들 둘을 강제 징용해 일본으로 끌고갈 정도로 박해를 받았다.

부친 박병식 장로는 1966년 3월 15일 대봉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았다. 교계에서 총대 활동을 포함해 다양한 활동을 했고, 이장, 어촌계장, 마을회관 건축위원장 등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 덕분인지 대봉마을은 교회와 마을이 조화를 이루는 마을이 됐다.

이 가문은 조부와 부친, 큰 형 박기열 장로가 대봉교회에서 대를 이어 원로장로가 됐으며, 박기상 장로의 두 형제도 모두 장로가 되어 가문이 종(세대)과 횡(형제), 십자가 모양으로 장로 가정을 이뤘다.

박기상 장로와 아내 김현숙 권사는 2004년 6월, 영등포노회 시온성교회에서 장로와 권사로 임직받아 20년째 시무하고 있다. 청년부 회장과 부회장으로 만나 결혼한 이 부부는 믿음의 대 잇기를 가정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여겨 가정 내 신앙적인 문화를 만들어 왔다. 유치원 때부터 결혼 전까지 두 자녀들이 외출하기 전 끌어안고 기도해 주었고, 초·중학생 때는 3년간 성경 과외를 시켰으며, 가정예배를 정착시키기 위해 일천번제 가정예배를 두 번, 총 이천 번의 가정예배를 함께 드리기도 했다. 두 자녀도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해 유년부 교사로, 청년 예배 찬양팀 리더로 섬기고 있다.

박기상 장로는 "100년 전 조부께서 복음을 받아들이신 후 현재 150여 명의 후손 거의 모두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신앙을 계승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천국에 계신 조부모님, 부모님께 가장 좋은 효도일 것이라 믿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정임 권사 가문 이야기



이정임 권사(만90세)는 강원도 철원군 어운면 월정리교회를 목회하는 이재극 전도사의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일제치하에서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묵묵히 지켜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했고, 해방 이후 청소년 시절 북한 공산정권의 거듭되는 회유와 조롱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채 학업을 계속하다가 6.25 한국 전쟁시 극적으로 가족과 함께 월남했다. 젊은 시절 솜틀집,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힘들게 자녀들을 양육하면서도 새벽기도에서부터 모든 교회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본을 보였다. 이정임 권사는'전국여전도회연합회'활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이는 1970년대 교회마다 여전도회가 모두 하나로 운영되던 시절, 획기적으로 세대를 구분하여 활동을 시도함으로 교회 여성들의 활동을 활성화시킨 성공 사례를 전국여전도회연합회 총대 모임에서 발표했다. 이후 교회마다 급속히 여전도회 세대 분립 활동이 번져 전국적으로 여전도회에 큰 변화가 일어난 동기를 제공하게 됐다.

첫째 아들 출생 후 첫 예배를 드리러 올라간 자리에서 "첫 태에서 난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니 그에게 드리라"는 설교 말씀에 장남을 목회자로 키울 것을 하나님께 서약하며 공부시켰는데 그 다음 아들들이 청년기가 되면서 줄줄이 신학을 결심하고, 모두 장신대에 입학해 목회자의 길로 나섰다. 또한 장로가 된 남편이 신림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산업과장의 일을 보는 중 남은 생을 목회자로 헌신하자며 신학을 권유하여 50대 중반에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고 외동딸마저 장신대 학생과 결혼해 그녀도 역시 목회자 부인의 길을 걷게 됐다. 이정임 권사는 젊은 시절, 신학을 전공해 여전도사로 오랜 세월 헌신했고, 남편이 목회를 시작한 이후로는 목회자 부인으로, 그리고 남편이 은퇴한 후에는 큰 아들 교회에서 권사로 임직받아 섬겼으며 현재까지도 노인들을 이끌며 90세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큰 아들 김일현 목사는 현재 양평의 국수교회에서 35년째 목회를 하며 지역 봉사와 문화를 선도하는 잘 알려진 모델 교회가 되었고, 둘째 아들 김태현 목사는 필리핀 선교사로 비낭오난 지역에 파송받아'필리핀 한국 선교협의회'본부 센터와 선교역사관을 운영하면서 문화선교를 주도하고 있다. 셋째 김정현 목사는 동두천 동성교회 담임으로 23년째 목회하며 교회를 성장시키고, 특히 청년 목회의 성공적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사남 김보현 목사는 한국기독공보사에 22년간 근무한 후 영국의 브리스톨 선교사로, 그리고 현재는 총회 사무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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