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람, 다른 인생
[ 목양칼럼 ]
작성 : 2024년 04월 24일(수) 08:00 가+가-
작년에 필자와 부교역자가 같은 날 교회를 비울 일이 생겼다. 그래서 새벽기도 인도를 장로님 한 분에게 부탁드리고, 방송장비 켜는 것은 늘 새벽기도회에 나오시는 중년의 권사님께 부탁드렸다. 방송장비라고 해봐야 한 번 세팅해 놓으면 두 세 개의 스위치만 켰다가 끄면 되기에 순서대로 설명 드리고, 본인도 한번 해 보시더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고 하시며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하신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5시,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다. 얼른 전화를 받았더니 그 권사님이다. 목사님이 이야기한대로 다 했는데, 아무리 해도 방송 장비가 켜지지 않는단다. 아무래도 고장난 것 같다고 하신다. 급하게 하지 말고, 다시 천천히 처음부터 제가 하라는 대로 따라 해 보시라고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안 켜진단다. 장로님을 바꾸어 달라고 하여, 방송장비가 켜지지 않으니, 죄송하지만, 오늘은 마이크 없이 목소리로 해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전화를 끊고는 '어제까지 멀쩡하던 장비가 왜 갑자기 그러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와 제일 먼저 방송실로 뛰어갔다. 고장이라면 주일 전에 수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방송장비들의 전원을 차례대로 누르니, 모두 정상 작동한다. '이상하다. 분명히 어제는 안 된다고 했는데….' 그 권사님을 주일에 만나 이상이 없으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리고는, 알려드린 대로 한번 해 보시라고 했다. 그랬더니 왜 장비가 켜지지 않았는지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송 장비 중에 믹서라는 게 있는데, 필자가 섬기는 교회 믹서는 디지털 기능이 들어있는 믹서다. 그래서 전원 버튼을 터치하듯 살짝만 눌렀다 떼어야 하는데, 그 버튼을 2~3초간 지긋하게 눌렀다 떼신다. 그러자 믹서는 전원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노란불이 깜빡거리면서 믹서의 설정 기능으로 전환되었다.

옛날 기기들은 설정하는 버튼 자체가 별도로 있었지만, 요즘 기기들은 같은 버튼을 사용하되 누르는 시간에 따라 다른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들곤 한다. 예컨대 스마트폰의 경우, 앱 이미지를 살짝 터치 하면 그 앱으로 들어가지만, 조금 길게 누르면 삭제나 이동할 수 있는 화면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히 같은 버튼인데 짧게 누르느냐, 길게 누르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 일로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게 있다. 같은 것이라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같은 시간이라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하루의 결과가 달라진다. 사실 하나님은 이런 일에 전문가시다. 특별히 같은 사람인데도 다르게 사용하신다. 같은 요셉이지만, 한 때는 종과 죄수로 주어진 역할을 감당케 하시고 나중에는 애굽의 총리로 그를 사용하신다. 같은 모세지만, 그의 인생 전반부는 애굽의 왕자로, 후반부는 하나님의 대언자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살게 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핍박자인 사울을 불러, 전도자 바울이 되게 하셨다.

알고 보면, 이것이 은혜다. 요셉이나 모세나 바울만 그런가? 아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그렇게 살게 하시고, 그렇게 사용하신다. 오래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나'로 살아가지만, 내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로 나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이후의 삶을 '은혜'라 부르고, 그 은혜를 누리며 산다. 하나님이 내 삶을 친히 인도하시기에 '나'는 동일하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 권사님이 예배당을 나가시면서 "목사님, 다음에는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다녀오세요" 하신다. 말의 온도가 참 따뜻했다.



김원주 목사/후포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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