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제자로 일하라
[ 일터속그리스도인 ]
작성 : 2024년 04월 25일(목) 11:02 가+가-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나고,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교수들이 사표를 내는 등 의료계가 혼란스럽다. 정부도 한 치의 양보 없이 의료계와 대립하고 있어 국민들은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 한 분이 떠오른다. 지금은 고인이 된 청년 의사 안수현 형제. 그는 '바보 의사'로 불렸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남들처럼 약삭빠르지 않고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는데 자기 모든 것을 바쳤기 때문에 얻은 명예로운 별명이었다. 그는 돈이 없어 검사를 받지 못하는 환우들에게 자기 월급을 털어 검사를 받게 하고, 쉬는 시간을 이용해 낙심중인 말기 암 환우들을 찾아가 기도하고 위로해주었다. 의약분업 사태로 의사들이 병원을 뛰쳐나가 파업을 할 때 그는 동료 의사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 병원에 남아 환우들을 돌보았다. 그는 의사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과 혜택을 하나도 남김없이 이웃들을 위해 사용했다. 그가 갑자기 죽었을 때 예금통장에는 잔고가 거의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다 주고 갔다. 찬양을 좋아하고 예배 참석을 즐겨하고 끊임없이 전도하던 그의 신앙과 삶은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문 일터 속 그리스도인의 모범사례로 남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일터는 날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항상 '내가 먼저' 승진하고 성공하고 성장하기를 꿈꾸며 앞만 보고 달리는 능력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일터다. 생존 경쟁에서 지면 낙오될 것을 두려워하는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존재하며 어떻게 일해야 할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다른 동료들처럼 자기중심적 경쟁문화에 휩쓸려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직장 생활은 신앙적으로나 직장인으로서나 행복하지 않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는 이길지 몰라도 일터에서 경쟁을 이용해 우리 영혼을 타락시키려는 악마와의 경쟁에서는 처절하게 패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이 승리하는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려면 '나는 일터에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자기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단호한 믿음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일터에서는 특히 강한 믿음이 필요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자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를 일컫는 말이다.(행 11:26)

그리스도의 제자는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른다.(막 8:34) 그리스도인은 교회와 집에서 뿐 아니라 일터에서도 제자로 존재한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오직 하나의 세상,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한 세상만 있을 뿐,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있는 세상은 없다.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일터는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일하는 곳이 아니다. 일터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일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제자는 성례전적 그리스도를 본받아 성례전적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셨다. 그분의 살과 피는 우리를 위해 주신 성례전(sacrament)이다. 그리스도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요 13:33~34). 자기 몸을 타인을 위한 성례전으로 내어주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은 일터에서도 자신을 동료들과 소비자들에게 내어주는 성례전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기중심적 경쟁문화에 젖어있는 일터에서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서로 사랑하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도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린다.

그리스도인은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할 뿐 아니라 하는 일을 통해 이웃들과 세상을 향한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고 세상에 유익을 주는 선한 결과를 얻도록 의식하고 최선을 다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선을 이루신다(롬 8:28). 일터에서 표현하는 믿음의 사랑은 직접적으로 드러날 때도 있지만 간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루터는 빵을 만드는 사람은 하나님 대신 이웃의 배고픔을 해결해주고, 따뜻한 옷을 만드는 사람은 하나님 대신 이웃을 추위에서 보호해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 전하는 청지기라고 설교했다.

그리스도인은 일터에서 제자로서 동료들과 일을 사랑할 때 그리스도를 더 깊이 만나고 사랑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구체적으로 경험한다. 일터 속 그리스도인은 성례전적 삶을 살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신앙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효재 목사 / 일터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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