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사회와 공공가치
[ 인문학산책 ]
작성 : 2022년 06월 23일(목) 07:15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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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적 인간학자 아놀드 게엘렌.

이르면 2024년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 정규리그에서 인공지능 심판 시스템이 도입될 예정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투수의 공을 판단하여 심판에게 전달하면 심판이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방식이다. 심판의 입을 통해 공표되지만 사실상 인공지능 컴퓨터가 전달한 내용을 알리는 것에 불과하다. KBO에서는 2020년부터 이미 2군 경기에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구성된 로봇심판이 투입돼 운영하고 있다.

반응도 좋다. 다만 컴퓨터가 인식하고 심판에게 전달되는 시간이 다소 지체되는 문제와 선수별 신체 높이의 적용에 대한 유연성이 결여되는 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아직 남아있다. 이제는 앞으로 그 간극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지가 남겨진 과제이다. 미국에서도 2019년부터 유사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관련 뉴스 기사에 따르면 미국의 '호크아이(Hawk-Eye)'의 경우 테니스, 크리켓, 미식축구 등 구기 종목에서 심판 보조 시스템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인간의 영역을 기계에 빼앗기는 것 같아 우려하는 시각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동안 거의 매 경기 구심의 판단에 크고 작은 잡음이 따라다녔던 상황을 감안 한다면, 긍정적인 부분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야구심판의 역할을 대신하듯 기술 문명은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오고 있다. 이젠 인간의 고유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영역들이 로봇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게엘렌(Arnold Gehlen)에 의하면, 인간은 형태생물학적 특징에 따라 볼 때 "결핍존재"이다. 그리하여 그의 생존능력은 인간 자신에게 주어진 자연에 적응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 자연적 상황과 천성을 극복하고 그들의 삶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달렸다고 보았다.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방법"이자 "묘책" 그 자체가 "기술"이다.

인간은 돌망치와 돌창과 같은 장비를 생산하여 취약한 "신체기능을 보완, 강화"하였고 부싯돌로 불을 지펴 자신의 몸에 없는 기능을 찾아 "추가" 또는 "대체"시켰다. 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의 신체적 노역을 피하고도 자신의 의지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는데, 가령 마차, 자동차와 같은 운송수단의 발명이 그 계기가 되었다. 사람이 장소이동에 필요한 다리 및 육체기관의 활동을 더 이상 수행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를 게엘렌은 "신체기관의 탈부담" 또는 결핍의 "극복"이라 불렀다.

망치와 같은 연장을 통해 사람 손의 부족한 부분을 대체해 주었고, 망원경이나 현미경이 눈의 기능을 강화시켜 주었듯이 기술의 발달과 함께 사회적 기능 또한 기술적 수단을 통해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산업혁명 이후로 다양한 유형의 기계장치들은 사람의 노동력이 없이도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들을 깨닫게 하였다. 이젠 인간의 정신적 활동까지도 기계적 프로그램으로 메워가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그 주역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 시대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이다. 특히 인공지능이 정신을 대체한다는 점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거리를 가져다준다. 정신의 대체 가능성 여부를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대체된 정신작용이 나 또는 우리의 대체자인가 아니면 제3의 낯선 주체일까? 아울러 정신 활동의 대체가 가능하다고 할 때 그에겐 어느 정도의 자율성과 권한이 부여될 수 있을까? 이 과정을 통해 야기될 정신적 기능의 경직성과 왜곡은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

병원에서는 인공지능 로봇이 정교함을 요하는 수술을 집도하고, 공장의 생산라인은 기계로 일원화되며, 법원에서도 알고리즘에 의존한 로봇 판사가 내리는 판결을 선호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거리에선 자율자동차가 도시를 뒤덮고, 교회에서는 고인이 된 유명 설교자의 형상과 목소리를 한 아바타를 통해 교인의 신앙적 취향과 지적 수준, 생활습성에 맞는 맞춤형 설교를 송출할 수도 있다.

결핍과 한계의 보완, 대체 능력이 되어온 '기술'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보여줬다. 인공지능으로 달라질 미래사회는 더 많은 부분 우리의 노고와 고민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점을 기대케 한다. 다만 인공지능의 기능과 사회적 역할은 우리 자신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의 욕구와 필요, 가치와 연동된 체계를 갖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우리 문화의 성숙도가 AI 사회의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사랑과 정의, 공존과 배려와 같이 인류가 오랜 세월 추구해 왔던 공적 가치가 인공지능 기술과 적용 과정에 반영되고, 미래사회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힘과 자본의 논리가 모든 문화적 가치들을 잠식해버리고, AI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최악의 현실이 전개될 것이다. 그 기준점이자 텍스트는 사회가 제공한다. 성숙한 사회를 위한 관심과 노력이 긴요한 이유이다.

임채광 교수 / 대전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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