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백합화는 어떤 꽃일까? (상)
[ 성지의식물 ]
작성 : 2021년 03월 09일(화) 18:35 가+가-
이강근 목사7

광야에 피어난 온갖 들꽃들.

성경의 꽃 중 가장 잘 알려진 꽃이면서 가장 논쟁적인 꽃이 백합화다. 성지를 30여 년 간 가이드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바로 '백합화와 샤론의 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솔로몬과 연관돼 있고, 예수님의 꽃이요, 후에 예수님이 솔로몬과 백합화를 함께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백합화라는 이름이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는데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 아마도 백합화를 떠올리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비유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눅 12:27)

여기서 백합화가 어떤 꽃 이길래 솔로몬이 입은 그 어떤 의복 보다도 아름다운가? 게다가 여기에 쌍벽을 이루는 연관된 꽃이 샤론의 꽃이다. 아마도 찬송가 '샤론의 꽃 예수'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면서 늘 궁금해 지는 꽃이다. 이 두 꽃이 연관이 되는 것은 바로 아가서 2장 1절에 함께 나온다.

"나는 샤론의 수선화(하브쩰레트)요 골짜기의 백합화(쇼샨)로다"

백합화가 집중적으로 언급되는 곳이 아가서다. 구약성경에 총 12번이 언급되는데 아가서에서만 8번이 나오니 말이다. 아가서에서는 수선화와 백합화가 함께 등장하며 이후 백합화라고 언급된 히브리어 꽃명은 쇼산나다. 함께 등장한 수선화는 하브쩰레트. 즉 샤론의 하브쩰레트요 골짜기의 쇼산나로다. 분명 다른 두 꽃인데 칠십인역과 라틴역에서는 이 두 꽃을 구분없이 봤다. 그게 반영된 것이 이사야서 35장 1절이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하브쩰레트)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이 구절에서 아가서에서 수선화로 번역된 하브쩰레트를 이사야서는 백합화로 본 것이다. 문자적으로 보면 서로 다른 두 꽃을 같은 꽃으로 번역한 문학적인 관점. 왜 같은 꽃으로 보았을까? 이 관점이 이미 성지의 백합화가 무엇이냐에 힌트를 갖고 있다.

아가서에서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라 한 것은 문자적인 두 꽃 이라기 보다는, 문학적인 들꽃의 총칭으로서 산지 골짜기의 백합화에서부터 해안평야 샤론의 수선화까지 이스라엘 전지역에서 피는 들꽃들이라는 것. 마치 한라에서 백두까지가 한반도 전체를 의미하듯이, 또 창세기의 여자와 남자를 만드셨다는 표현도 모든 인류를 만드셨다라고 보는 문학적인 표현 말이다.

이 두 꽃을 혼용했던 중세시대 이후, 근대에 성경신학이 발달하면서 다시 쇼샨나는 백합화로 하브쩰레트는 수선화로 구분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두 꽃은 모양새가 비슷하지만 쇼산나(백합화)는 세 줄기로 뻗어난 꽃으로, 하브쩰레트(수선화, 또는 들꽃)는 여러 줄기로 뻗어난 꽃으로 특징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절을 통해 설명하면, "주는 저산 밑에 백합" 할 때 백합은 쇼산나, "샤론의 꽃 예수" 할 때는 샤론의 꽃은 하바쩰레트(수선화 또는 들의 꽃)이다.

필자는 성지순례시 가이사랴-갈멜산을 오갈 때 샤론평야를 지나며 종종 부른 찬양이 '샤론의 꽃 예수'이다. 봄철의 차창 밖에 펼쳐진 그 수많은 꽃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꽃이 바로 진한 붉은 색 아네모네다. 그리고는 "저 돋보이는 붉은 꽃이 아네모네인데 바로 성경의 백합화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아네모네가 백합화가 되었는가?

이강근 목사 / 이스라엘유대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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