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수풀(하)
[ 성지의식물 ]
작성 : 2021년 02월 08일(월) 12:05 가+가-
이강근 목사4

아브라함의 수풀에 맺혀 있는 열매. 모양이 후추와 비슷하다.

이 관목의 라틴명 'Vitex Agnus Castus'는 '순한 어린양을 묶다'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관목은 이스라엘 땅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4000년 전에는 모리아 산자락에도 자랐지만, 도시화된 요즘은 광야로 나가야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관목은 초여름 꽃이 피고 초겨울에 꽃이 지고난 후 씨앗이 맺힌다. 씨앗은 후추하고 똑같이 생겼다. 그런데 이 아브라함의 관목은 이미 유럽에서는 흔히 알려진 식물이다.

고대로부터 이 Vitex Agnus Castus는 남성에게 좋지 않은 식물로 불렸다. 남성의 힘을 감소시키는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바로 수도사가 그렇다. 기도와 수행에 집중해야 하는 수도사들은 육체적 힘을 통제해야 했고, 이를 위해 모양도 맛도 후추와 비슷한 이 관목의 열매를 먹었다. 필자는 이를 '육체는 죽이고 영성은 살리는 수도사의 후추'라 이름 붙여봤다. 맛이 궁금했다. 그래서 후추 몇 알을 입에 넣고 딱 깨무니 톡 쏘는 맛이나 향이 후추와 동일하다.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후추의 향이 입 안에 오래 남아 있다.

필자가 남성 목회자들과 광야에 들어갈 때는 장난 삼아 몸에 힘이 부족한 분들은 냄새조차 맡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 열매는 지금도 온라인 상에서 '수도사의 후추(Monk's Paper)'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반면 여성에게는 매우 좋은 약제여서 월경주기가 불규칙한 여성의 치료제로 이용되고 있다. 누구나 인터넷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건강보조식품 정도로 보인다.

필자는 이 관목을 살피기 위해 다시 한번 광야로 나섰다. 11월까지 제법 꽃이 피어있던 관목이 1월이 되니 꽃은 싹 지고 후추 같은 열매가 촘촘히 맺혀 있었다. 앙상한 가지들은 여전히 쭉쭉 뻗어 있었다. 가지를 휘어보니 유연하고도 질기다. 마치 우리의 칡넝쿨을 상상하면 된다. 길이가 1~2m다. 그래서 얇은 것은 바로 묶는 줄로 사용해도 되고, 좀 굵은 것은 껍질을 길게 벗겨 여려 겹으로 꼬아 강한 새끼줄로 사용한다. 베두윈족들은 이 껍질로 바구니를 만들어 사용한다고 한다. 그럼 여기에 숫양이 걸릴 수 있을까? 충분히 걸릴 수 있다. 풀을 뜯으며 머리를 들이 밀었다가 고개를 들면 뿔이 덤불에 걸릴 만하다.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히브리어로 읽어보면 한글 성경에는 숫양이라고 돼 있는데 히브리 성경에는 아얄(사슴)이라 기록돼 있다. 그렇다면 숫양보다 뿌리가 더 큰 사슴이 이 관목에 걸릴 가능성이 큰 것이다. 광야에서 이 관목의 가지를 잘라 손을 묶어보기도 하고, 껍질을 벗겨 새끼줄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머리를 들이밀어 고개를 들어 걸릴만한지 확인도 해보았다.

신기하다. 세상에 4000년 전 이삭 대신 번제물로 드릴 숫양이 걸렸던 수풀이 바로 이것이라니.

이강근 목사 / 이스라엘유대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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