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 갈망한 루이스
[ 루이스다시읽기 ]
작성 : 2019년 12월 24일(화) 08:44 가+가-
<16, 완결> 루이스(와)의 만남
여전히 더위가 부담스럽던 9월 첫 주에 시작한 루이스 연재가, 어느덧 겨울의 한복판을 향해 달려가는 연말이 되면서 마지막 16회 차가 되었다. 결론의 제목을 '루이스(와)의 만남'으로 정했다: 루이스가 만난 영원한 존재/세계 그리고 필자가 만난 루이스. 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았다. 꼬박 4개월 동안, 그것도 방학이 아닌 바쁜 학기 중에, 루이스 관련 글을 매주 한 편씩 쓰면서 루이스가 말한 시간의 '두께'를 톡톡히 경험했다. 매 회마다 타인으로서의 루이스가 아니고 동행자로서의 루이스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이미지를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루이스의 깊은 갈증을 드러내고자 애썼다. 제한된 지면 안에서 나름의 지적 몸부림이었다. 얼마나 전달이 되었는지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리라.

루이스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뛰어난 사진작가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그는 웅장한 장면들을 정성을 다해 멋지게 찍어서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독자들은 루이스가 찍은 사진에만 열광하고 막상 루이스가 보여주고자 하는 장면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필자는 루이스가 장엄한 장면들을 찍을 때/묘사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리고 그때의 경이(wonder)는 어떠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그동안 필자가 쓴 루이스 연재 글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에 대한 작은 결과물이다, 루이스도 필자의 관심을 따뜻하게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루이스는 문학을 통해 인간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자신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문학은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주변을 향하게 하고 자신을 뛰어넘게 해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갖는 동시에 오히려 더욱 자신다워 질 수 있다. 루이스에게 이런 목적에 가장 적합한 장르중의 하나가 판타지였다. 루이스는 판타지를 "불가능과 초 현실을 다루는 모든 이야기"라고 정의하며 이러한 이야기를 "문학적인 판타지"라고 부른다. 판타지는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운 공간이며 독자들을 또 다른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나니아 연대기>의 성경을 연상시키는 이야기 자체는 특별히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상상의 용광로 속에 넣어서 재탄생시키면 그 속에 숨어있던 본래 모습이 더욱 새롭고 보다 더 명료하게 드러난다. 루이스에 따르면, 작가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창조해내는 자가 아니고,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자이다. 즉 작가가 창조하는 것은 작품에 담긴 진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루이스는 what(내용, 주제)보다 how(방법, 형식)에 관심이 더 많았다. 시공간을 감정적(emotional)이고 감각적(sensorial)인 단어들로 표현하고, 형용사와 부사 같은 수식어(epithet)들을 정교하게 사용하고 있다. 실존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수식어보다 동사에 관심이 더 많은데 반해, 루이스는 수식어에 특별히 애정을 쏟았다. 루이스의 글이 화려하면서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사실 하나는 바로 시간과 공간의 한계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시간과 공간도 피조물이어서 창조자의 다스림 속에 있다는 것이다. 시간을 뛰어넘는 방법은 공간의 확장성이다. 공간이 시간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절대자가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시간 안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공간을 무한히 확장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창조자와 피조물이 만날 때는 어떨까? 피조물도 창조자의 공간에 들어가면 시간 안에 있지 않게 되고 시간은 영원성을 띄게 된다. 성경에도 하나님과 피조물이 만나는 모든 장면들에는 시간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다.

루이스는 실존이 절대자를 만나는 가장 큰 도구라고 생각한 듯하다. 다시 말해 인간(성)은 창조자를 만나는 결정적인 도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이스는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인간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을 '갈망'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삶과 나니아에서의 많은 모험은 책의 첫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며, 새로운 장이 그 이전 장보다 훨씬 더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로 계속해서 채워져 나갈 것이다.

하나님은 상상한 것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이미지를 닮은 인간에게도 그 상상의 모습이 들어있다. 그러나 인간이 상상한 것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특히 상상을 글/현실로 가시화하는 작업은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여정과 닿아있다. 상상은 창조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인간의 노력을 자극하고 격려한 선구자이다. 그는 앞장서서 그 노력이 얼마나 멋지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는 점점 빛을 잃어가는 이 땅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인 상상력을 아낌없이 다 내주었다. <나니아 연대기>를 비롯한 루이스의 작품들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아담과 이브의 아들과 딸들을 향한 귀한 사랑의 선물이다.

시간이 공간을 통과하면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 이번 회를 끝으로 <루이스 다시 읽기> 연재를 마칩니다. 기독교 변증의 대가인 C.S. 루이스의 삶과 작품을 문학과 신앙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이인성 교수님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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