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재난 탈출기 <엑시트>
작성 : 2019년 09월 18일(수) 10:00 가+가-
따따따, 따- 따- 따-, 따따따. 구조요청을 의미하는 이 모스부호는 영화 '엑시트'에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엑시트'는 웃기면서도 유용한 재난 대처 방법들이 나와서 교육적인 특이한 재난영화다. 그런데 '엑시트'가 갖고 있는 특별함은 이런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재난영화에서 재난은 당대 사람들의 사회적 불안이 담긴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를 통해 유토피아적 열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시대상과 대중의 무의식을 반영한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경주 지진 등 재난재해가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취약한 사회안전망이 가시화되면서 불안과 위험이 키워드가 되었던 2016년, 재난영화 '부산행', '터널', '판도라'가 개봉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엑시트'는 다른 한국 재난영화들과 달리 피해자가 재난상황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출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그 과정에서 심지어 다른 피해자까지 구한다. 오늘날 청춘들이 처해있는 재난적 상황, 그간 한국사회가 재난재해를 경험하면서 생겨난 대중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다루는 '엑시트'만의 방식이다.

그저 시원한 액션과 쉴 새 없이 터지는 유머 때문에 '엑시트'를 한번 보고 잊어버리는 킬링타임용 영화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 나오는 "우리 상황이 재난 그 자체"이라는 대사에서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함축하고 풍자하는 감독의 의도가 영화에 담겨있다 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해 취업에 낙방하면서 집에서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용남(조정석)과 연회장 직원으로 취업했지만 부모 잘 만난 상사의 갑질과 성희롱에 괴로워하는 의주(임윤아), 두 사람은 '대기업 취업=고층빌딩 출근=성공=안전'의 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이 시대 짠내 나는 청춘들을 대변한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자기계발은 당연한 것이 되었지만, 경제자본으로 치환이 가능한 생산성이 높은 것이어야만 의미가 있기에, 대학시절 산악 동아리 경험은 하등 쓸데가 없다. 아무도, 심지어 가족도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 사회학자 최태섭은 책 '잉여사회'에서 잉여란, 치열한 경쟁으로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주변적 존재라고 설명하면서,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잉여적 존재로 내몰리고 있다고 하였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잉여에 하층계층을 포함시킨다.

수직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사회계층 간 불평등을 다룬 영화 '기생충'이 반지하와 고급저택의 절대간극을 보여줬다면, '엑시트'는 그 간극을 깨뜨린다. 두 주인공이 '쓰레기 봉투'를 방재복 삼아 뒤집어쓴 채, 산악 동아리 경험과 스킬을 동원해 고층빌딩을 향해 상승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성공과 성취의 방식이 아니라 모두가 터부시하던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잉여의 방식이다.

영화의 엔딩에 흘러나오는 주제곡 '슈퍼 히어로'는 "누구에게나 그들만의 기회가" 있으며,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무한한 능력"이 있음을 노래한다. 욜로(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포기에 익숙해지고 만 잉여 같은 존재들의 이야기를 교회가 듣고 신뢰하는 것, 세상이 판단하는 쓸모와 생산성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들에게 잠재된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재발견하게 해주고, 주체적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안전망이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재난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청년들을 향한 이 시대의 교회의 과제일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진정한 구원자이자 히어로이신 하나님을 따르는 교회에게 세상을 치유하고 구하는 작은 히어로가 될 수 있는 기회로 초청하는지도 모르겠다.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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