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육적으로 만들어지는 가족
탄자니아 김정호 선교사3
작성 : 2019년 03월 06일(수) 13:23 가+가-
세계선교부에서는 선교사가 현장에서 2년 동안 수습을 거치며 현지 문화와 언어를 배우며 먼저 적응력을 기르게 한다. 우리는 탄자니아 최대 도시인 다르에스살람으로 입국해 스웨덴 교회가 세운 자유오순절교단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달간 머물렀다. 탄자니아는 긴 해변을 끼고 있는 나라이고 다르에스살람도 항구도시다. 모험과 개척을 좋아하는 필자는 낯설지만 게스트하우스 뒤편에 있는 해변가로 세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 숙소에서 해변가에 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얘길 들었지만, 호기심에서 과감하게 세 아들까지 데리고 나갔다. 결국 탄자니아서 처음으로 어린아이의 손에 든 가방과 수영 도구를 소매치기 당하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됐다. 아마도 아이들은 그날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불신을 품게 됐을 것이다.

한 달 후에 거주지를 미코체니 지역으로 옮기고 스와힐리 언어학교에 가서 2달간 언어훈련을 받았다. 탄자니아는 1963년 12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후에 초대 대통령인 쥴리어스 은예레레가 130여개 언어를 스와힐리어 하나로 통일시켰다. 그래서 현재 전국 어디서나 스와힐리어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지금도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에서는 스와힐리어가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탄자니아는 남한 9배 정도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25개의 도로 구성돼 있다. 이중 중요한 도시들을 수습기간 동안 대중교통을 사용해 돌아다녔다. 어떤 곳은 반군이나 게릴라가 나타난다며 총을 든 군인이 우리를 안내해 준 지역도 있었다.

전국을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섬 지역을 방문했다. 탄자니아는 섬을 포함하고 있다. 잔지바르라고 하는 섬이 있었는데 두 개의 섬으로 구성돼 있었다. 웅구자와 펨바라는 섬이다. 페르시아, 로마제국, 인도, 중국, 술탄제국 등 세계 열강들이 두루 거쳐간 유서 깊은 섬이다. 지금은 유럽의 휴양지로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곳이기도 하다. 오지를 방문하며 속으로 한국 선교사가 없는 곳, 그리고 복음이 가장 필요한 곳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했는데, 이미 웅구자섬엔 한국 선교사 몇 가정이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펨바라섬에는 한국인이 살지 않았고, 전도도 절실한 곳이어서 펨바로에서 사역하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자녀 학교 문제를 얘기하며 반대를 했다. 그러나 필자는 마음에 정한 대로 과감하게 전진했다,

일 년이 지나 둘째 아들인 평안이가 오른쪽 팔꿈치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선교지에서 다치면 현지의 의료시설이 부족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파송 받은 지 얼마 안 됐고, 거리도 멀어 그나마 괜찮은 현지 병원에서 깁스를 했다. 그런데 세 달 쯤 지나 뼈가 붙지 않은 걸 발견하고 뒤늦게 한국 병원에서 뼈를 붙이는 수술을 받게 됐다. 결국 오른쪽 팔이 조금 굽어 버렸다. 지금도 멋진 아들의 팔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찡하다. 선교지에서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 누군가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한다면 이는 선교사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이다. 막내 아들은 유해곤충 때문에 몇 개월 고생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잘 적응하고 있다. 탄자니아의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만들어 지고 있다.

김정호 목사 / 총회 파송 탄자니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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