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참으신 사랑
[ 가정예배 ]
작성 : 2019년 03월 12일(화) 00:10 가+가-
2019년 3월 12일 드리는 가정예배

임덕수 목사.

▶본문 : 베드로후서 3장 9절

▶찬송 : 503장



사랑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사랑만 있으면 어떤 문제라도 다 해결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그와 반대다. 고린도교회를 들여다보자. 규모가 큰 교회였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여러 가지 은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당대에 크게 쓰임 받던 사도 바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었다. 또 위대한 성경학자 아볼로의 가르침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는 끊임없이 문제가 있었다. 분쟁이 그치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그들에게 있어야 할 한 가지,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모습들을 드러내고 말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사랑의 특성을 열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사랑은 오래 참는다는 것이었다. 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다툼이 있었는가? 서로가 서로를 향해 오래 참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의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까지 가지고 나갔던 것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아오셨다. 수천년 동안 참고 또 참아오셨다. 왜 하나님이 패역한 인간들을 향해 그토록 오래 참아 오셨는가? 본문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이렇게 일깨우고 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래 참아 오신 것이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고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참아 오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은혜를 입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된 우리들을 향해서 참고 또 참으신다면, 우리도 마땅히 서로를 향해 참으면서 살아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조지 애틀리라는 젊은 선교사가 중앙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했다. 하루는 그가 자기의 숙소를 떠나 홀로 주변 지역을 탐사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아주 성능이 좋은 자동소총이 쥐어져 있었다. 맹수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 인근의 원주민들이 창과 몽둥이를 들고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참았다. 결국 끝까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그대신 원주민들의 창과 몽둥이에 자신의 몸을 내맡겼다.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그는 스데반처럼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그가 죽고 난 뒤에 추장은 그의 손에 있는 자동소총을 확인해 보았다. 그 속에 10발의 실탄이 들어 있었다. 비로소 추장은 그의 고귀한 뜻을 깨닫게 되었다. 추장은 그의 얼굴에 입을 맞추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의 뜻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죽기까지 참아낸 그일로 그곳 원주민들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우리네 삶의 자리 곳곳에 참지 못함으로 들끓는 뒤틀린 삶들이 있다. 그럴수록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 '오래 참으신 사랑'으로 잘 살아내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래 참으신 그 사랑을 우리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덕수 목사/사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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