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자기성찰
[ 인문학산책 ]
작성 : 2022년 07월 13일(수) 17:54 가+가-
64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회자된 이 말을 교회와 교인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교인의 관심은 무엇보다 개인과 가족의 안녕에 있으며 교회의 일차적 관심도 개혁보다 현상 유지에 있기 때문이다. 모범적인 신앙인과 교회는 이러한 평가와 상관없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진단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한국교회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교회 위기의 책임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교인에게도 있다. 본 연속 칼럼은 목회자와 교인의 인문학적 성찰이 위기 극복의 필수조건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신학도 삶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인문학의 범주에 속한다. 물론 신학은 하나님의 존재와 말씀을 근본 대상으로 하기에 인문학과 전혀 다른 차원의 학문이다. 하지만 신학이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한 학문이라면 그것은 인간과 무관할 것이고 심지어 인간을 소외시키는 학문이 될 것이다. 신학을 이렇게 규정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와 상관이 없게 된다. 오히려 신학의 본래 목적은 인간 구원의 섭리를 가르치고 이를 실천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실천을 신학만이 감당해야 한다면 세상에는 신학만 존재할 것이고 일상의 삶도 신학의 가르침만으로 영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세에도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신학만이 창조의 섭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철학과 과학의 역사를 통해 입증되었다.

목회자와 신앙인에게 인문학적 성찰을 요구하는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한국교회가 성장을 멈춘 핵심 이유는 목회자와 교인의 삶이 시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세상과 삶의 양식 속에서 시민들은 그때마다 새로운 질서와 삶의 의미를 발견해 왔다. 근대 한국의 상황과 달리 시민의식의 성장은 교회 덕분이라기보다 높은 교육열과 사회정치적 민주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시민의식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목회자와 그 가르침의 수준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 같다. 기복에 의존하는 수요(교인)에 맞추어진 공급(목회)이라는 평가는 너무 진부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교회의 현주소이다. 그렇다 보니 공동체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민주적 장치는 교회에서 무력화되고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교회의 덕을 해친다'는 이상한 논리로 정죄당한다. 이것은 정치화된 목회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교인은 교인대로 목회자에게 복종하면 축복이 임할 것이라는 왜곡된 믿음을 붙들고 잘못을 보면서도 이를 외면한다. 21세기 교회는 이러한 수준을 넘어서야 하며 경건의 힘으로 시대를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를 위한 말씀 선포와 시대를 선도하는 삶이 절실하다.

새로운 시대는 생각하는 삶과 성찰하는 신앙을 요구한다. '쉬지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는 말씀을 인문학적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기도하는 사람은 시대와 현실을 성찰하며 일상에서 접하는 여러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도하는 순간 사람들은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자신과 대면한다. 이러한 솔직함과 순수함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이다. 기도의 순수성은 보편자인 하나님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므로 모든 일과 사람을 아우르는 보편적 힘을 갖는다. 쉼 없는 기도는 전체와 보편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러나 교회의 전통과 관례를 중시하는 이들은 새로운 질서를 외면하며 전체를 보게 하시는 하나님과 소통하지 못한다. 이들은 기존의 방식과 틀을 유지하는 데 집중할 뿐이다. 이런 교회는 이 시대 속에서 결코 성장할 수 없다.

인문학과 철학은 생각을 요구하고 기존 생각에 대한 상위의 생각을 요구한다. 생각의 생각은 개별의 단계를 보편의 단계로 이끈다.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자기성찰의 과정을 거치면 이웃을 사랑하는 교양인으로 성장한다. 따라서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언명과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으며, 자기성찰 없는 목회와 신앙생활은 그 열심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자기성찰 없는 신앙은 개인적 관심사와 관련된 세계만 접하면서 하나님의 보편세계를 영원히 볼 수 없을지 모른다.

독일 신비주의 전통을 시작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7)에 의하면 하나님은 원래 존재를 소유하나 인간은 순수 무(無)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 신의 불꽃을 체험한다면 텅 빈 인간 가운데 하나님이 채워지고 그는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그는 하나님 안에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무에서 존재로 바뀌는 우주적 체험을 통해 신앙인은 과거의 자기를 넘어서서 새로운 자기가 된다. 기도와 하나님 체험, 철학적 성찰. 이 셋은 이전의 자기와 새로운 자기가 만나는 지점이며 여기서 자기는 새로운 자기로 변화한다. 새로운 자기의 탄생은 새로운 우리를 구성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새로운 자기에서 새로운 우리가 형성되고 새로운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은 기도와 자기성찰의 결과이다.

최신한 명예교수 / 한남대학교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