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의 힘과 좋은 의견
[ 논설위원칼럼 ]
작성 : 2020년 01월 06일(월) 13:00 가+가-
올해는 총선이 있는 해이다. 대통령 탄핵을 경험한 이후에 치르는 선거인데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치러야 하는 선거이기에 올해의 총선은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일부 교회가 거리로 나와 정치 한 가운데 발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라, 불행하게도 올 선거철에는 교회가 정치에 크게 휘둘릴 것 같은 우려를 하게 된다.

민주 사회에서는 서로를 설득하기 위한 열정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 이 열정이 표현되는 방식은 말이고, 대화가 그 설득의 장이며, 사실과 좋은 의견이 설득의 무기가 된다. 큰 목소리를 내고 단체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에 입각한 좋은 의견을 표명하는 것일 때에만 설득력을 가진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순한 소음과 불편이며, 폭력적일 뿐이다.

사실(fact)은 너무나 명확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 만큼 취약한 것이 없다. 거짓에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믿을 수 없는 사실, 차라리 꿈이기를 바라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가. 이처럼 사실은 잔인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거짓말은 항상 달콤하고, 그럴 듯 하며, 합리적이다. 거짓말은 듣는 사람이 믿을 수 있도록 치밀하게 이성적으로 계산해서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에 논리적이며, 내 귀에 쏙쏙 들어오고, 믿고 싶어진다.

인간은 인식론적으로 사실에 취약하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낱낱이 따져 확인해 볼 수도 없으며, 또 내가 직접 눈으로 목격한다고 해도 내 눈의 기만에 스스로 속을 수도 있다. 우리의 눈은 사물을 투시할 수 없고, 직접 목격할 수 없는 부분은 우리의 기대에 찬 상상력으로 채워버리기도 한다. 나의 가족과 친구, 동료 성도들의 말을 듣고는,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혼자 상상하고 그것을 사실로 믿어버리는 오류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범해 왔던가. 좋은 투표는 올바른 판단에 기초하고, 올바른 판단은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사실에 대한 엄격한 확인은 정치적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근거이다.

올바른 판단의 또 다른 중요한 근거는 좋은 의견이다.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좋은 의견과 다른 의견은 구분된다. 전쟁을 사랑하는 의견과 평화를 사랑하는 의견은 그저 다름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다. 집단의 이익을 위한 의견과 약자를 위한 의견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하는 의견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분명한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리는 옳고 그름의 문제이지만 의견은 좋고 나쁨의 문제다. 정치의 영역에 들어가면 진리는 의견의 문제로 전환된다.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주장도 정치 영역에서는 좋은 의견인지 나쁜 의견인지를 판단 받는 대상이 된다. 이는 정치 영역의 본질적 특성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정치적 의견을 내려는 그리스도인은 이런 특성을 알아야 한다.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거짓과 사실을 분간하는 능력과 의견의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능력이 절실하다. 정치적 소용돌이를 앞에 둔 교회는 정치적 분별력을 키울 좋은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특정 주장을 강요하는 일방적 강의가 아니라 대화와 토론으로 분별력을 키우는 기회를 말이다. 이런 일을 해 줄 그리스도인이 많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김선욱 교수/숭실대 인문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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