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얽매이지 않는 목회
작성 : 2019년 10월 18일(금) 00:00 가+가-
신대원 합격하자마자 반 지하 방 한 칸을 얻어 무작정 상경한 뒤 매일 장신대 기도탑에 올라가 절박하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서울에 아는 분도 없고 아는 교회도 없습니다. 어디든지 가장 먼저 오라는 교회가 있으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줄 알고 가겠습니다." 어느 날 기도탑에서 내려와 학교 게시판을 보니 작은 쪽지 메모가 모서리에 붙어 있었다. '교육전도사 구함. 독바위교회' 양주시가 어디 있는지, 독바위교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기도 응답이라 믿고 교회를 찾아갔다. 버스 타고 구리 남양주를 거쳐 의정부 터미널에서 두 시간에 한 대씩 있는 버스에 몸을 싣고 꼬불꼬불 시골길을 한참 돌아 독바위교회에 도착했다. 그것이 독바위교회와의 어설픈 첫 만남이었다. 그 후 독바위교회에서 삼 년 반 사역하고 떠났다가 칠 년 만에 다시 담임으로 부임하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지만 사람의 일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마다 삶의 형편과 노정이 다른 만큼 하나님의 역사도 각각이어서 천편일률적인 관점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 것처럼 필자는 불확실한 미래에 던져진 것처럼 살았다. 고3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이후로 사람의 계획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면서도 내 마음 속에 반석처럼 견고한 확신이 하나 있었다. '선하신 하나님은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었다. 미숙함과 어리석음을 날마다 직면하면서도 지금까지 실족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 확신은 내 삶뿐 아니라 독바위교회 목회의 기초가 되었고 오늘까지 은혜롭게 목회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교회는 대부분 사명선언문과 마스트플랜 또는 목회 비전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독바위교회 부임한 뒤 대형교회 부목사로 사역한 가락이 있어 호기롭게 만 명의 성도를 달라고 부르짖었고 그때만 해도 새가족이 줄줄이 밀려와 금방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부질없는 구호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교회 신축 포기 결정과 함께 그 기도문도 미련없이 버렸다. 굳이 목표지향적인 숫자가 필요한가? 수량적인 목표를 세우는 목적은 무엇인가?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기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경제 논리와 마케팅 전략에 물든 것은 아닌가? 사람이 세운 비전에 하나님을 맞추려는 노력은 다분히 인본적이고 무속적인 행태가 아닌가?

50대 후반으로 접어드니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아졌다. 후배들에게서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찬양 가사를 바꿔 이렇게 대답한다. '내일 목회를 나는 모른다. 하루하루 목회할 뿐이다.' 이 말은 무대책 무계획으로 목회한다는 뜻이 아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예상치 못한 수많은 변수가 있고 그것은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무관하지 않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목회하시도록 한발 물러나 조력한다는 의미이다. 독바위교회는 숫자로 나타내는 비전이 없다. 더 큰 규모의 교회가 되기 위한 목표도 없다. 내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채워나갈 뿐이다.

최성은 목사/독바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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